청년 일자리는 성공적으로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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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자리 실종은 정부 정책 탓 시급, 알바 등 허드렛 자리만 넘쳐 온갖 가짜 경제학이 승리한 결과


  • 관리자
  • Tue, 27 Oct 2015 03:03:22 +0900

 정규재 칼럼

청년 일자리는 성공적으로 파괴되었다

입력 2015-09-21 18:20:59 | 수정 2015-09-22 00:52:17 | 지면정보 2015-09-22 A38면
좋은 일자리 실종은 정부 정책 탓 
시급, 알바 등 허드렛 자리만 넘쳐 
온갖 가짜 경제학이 승리한 결과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092136501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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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을 걱정하는 한숨 소리가 넘친다. 대통령의 다급한 청년펀드 기부금도 그렇게 나왔다. 기부는 회사 돈이 아니라 개인 돈이라야 한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회장님들의 고민도 깊어진다. 그러나 일자리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청년 일자리를 여지없이 파괴해 온 러다이트 운동은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좌익정권이야 기업과 일자리를 파괴하는 것이 본업이라 하겠지만 보수정권에 들어와서도 일자리는 계속 파괴되고 있다.

지금 청년들에게는 허드렛일과 알바, 시급자리와 후미진 골목길 일자리, 내일의 기약도 없이 쓰이고 버려질 운명인 단기 비정규직 일자리만 남아 있다. 어른들은 눈높이를 낮추라고 청년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소위 청춘 멘토들은 옛날에는 일자리가 많았노라고, 그래서 일자리가 없는 지금의 청년들에게 미안하다고,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 때문이라는 식의 기억상실에 정신질환자 같은 이야기를 제멋대로 지껄이고 있다.

청년 일자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파괴되었다! 아니 지난 10여년간 대한민국 정치와 정부가 해온 일이라고는 좋은 일자리를 파괴하고, 나쁜 일자리를 보존하는 것이었다. 잘 알고 있듯이 중소기업 일자리는 지금도 꽤 남아 있다. 공단지역에서는 사람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다. 골목 안쪽에는 지금도 싸구려 일자리가 많다. 도소매 음식숙박에도 일자리가 있다. 전통시장에도 그렇다. 농어촌에서는 사람을 구하기 더 어렵다. 시급이나 알바 일자리는 이렇게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런 일자리 공백은 이주 노동자들이 채워 가고 있다. 국민소득 2만~3만달러에 대학까지 졸업한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낮춰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가구공장에서 아교 칠이나 하라고 권할 수는 없다.

정권마다 대기업을 옥죄어 왔다. 중소기업은 장려·보호·유지해 왔다. 골목상권은 깡패와 바보들까지 가세하면서 결사적으로 지켜냈고, 대형 유통업체는 점포 확장 등 추가적인 영업 활동을 제한당했다. 그 결과 대기업 일자리는 사라졌고, 눈높이를 낮춰야 하는 일자리들은 유지·장려·보호됐다. 골목상권과 함께 골목의 시급과 알바는 그런대로 유지됐다. 동반성장, 골목상권 보호,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 전통시장 육성, 경제민주화는 그것에 걸맞은 싸구려 일자리만 남겨 놓았다. 정책은 성공한 것이다!

놀랄 일은 심지어 청와대 회의에서조차 취업유발계수를 오독하는 정책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출 10억원당 삼성전자는 일자리 몇 개 못 만들지 않나.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종 일자리라야 취업유발계수가 높다”는 주장은 물론 ‘틀린 말’이다. 취업유발계수가 가장 높은 일자리는 농업이다. 다음이 파견업 등 소위 사업서비스업이다. 취업유발계수가 높은 일자리는 당연히 허드렛일자리다. 생산성이 낮고 임금도 낮다. 취업유발계수가 무엇인지 모르는 엉터리 경제학은 정부 예산과 자본을 생산성이 낮은 곳으로 배분하는 엉터리 정책을 낳았고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비정규직 단기 시급류 알바 일자리만 남아 있는 것은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성공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보호 역시 일자리를 크게 줄이는 데 성공했다.

생각해보라. 지난 10여년간 한국 정부가 추진해 왔던 정책들을…. 모두가 골목과 중소기업 등 낮은 생산성 분야를 온존시키며 창조적 파괴를 거부해 온 것이다. 세계적 기업일수록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 결과 값싼 내수용 일자리만 남았다. 지금 대통령은 청년 실업을 염려한 끝에 자선기금으로 펀드를 조성할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지금도 사회적 합의 운운하면서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삼고 있다. 노동유연성 개혁은 지금도 변죽만 울린다. 에바 페론은 더 자주 기부금을 내놨다. 그럴수록 더 많은 가난이 쏟아졌다. 일자리는 기업이 창출해 낸다. 좋은 일자리는 더욱 그렇다. 타이피스트를 보호하면 컴퓨터가 보급되겠는가. 버스안내양을 보호하면 버스카드 공장이 생겨나겠는가 말이다. 바보들은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한다. 
 
미국 대학은 대체로 등록금과 졸업생들의 첫해 연봉이 일치한다. 그래서 등록금이 비싸도 학생들의 저항이 적다. 학자금 대출기관들도 상환능력을 걱정하지 않는다. 대학은 치열한 경쟁기구들이어서 교수진의 연봉을 평가나 성과에 의해 결정한다. 미국 대학이 전 지구적으로 인재를 불러 모으며 최강의 지식 경쟁력을 자랑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직업은 언제나 교육의 결과다. 경제성장이나 사회발전도 그 결과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드문 예외가 있다면 자원이 펑펑 쏟아지는 경우가 있겠는데 그것은 때로 국가와 사회를 망치는 주범이다. 좋은 직업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그것에 걸맞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5만달러의 직업을 가지려면 5만달러의 전문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롤즈를 비롯한 소위 좌익 정의론자들이 자본주의를 경멸하면서 교육을 자본주의 교정수단이라고 말할 때조차 이를 지칭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 대졸자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백수 처지를 비관하고 있다면 이는 교육의 실패 때문이다. 평준화 교육은 아이들을 놀리겠다는 바보들의 결심이었다. “이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이 부족하다”는 거짓말을, 그 아이가 대학에 실패할 때까지 되풀이하는 비열한 제도다. 평준화는 다른 것을 같게 취급함으로써 학생들이 미래의 다양한 직업을 선택할 거의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는 악의적인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서는 눈치도 빠르게 외고나 특목고를 우회하는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학생을 잡동사니처럼 취급한다. 한국 교육의 그나마의 성과는 사교육 덕분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사교육까지 때려 부수고 있다. 최근에는 직업교육조차 직무능력이라는 이름으로 국유화하는 중이다.

그렇게 이공계 학생이 미적분을 모르고, 경제학과 4학년이 ‘왜 어떤 곡선이 원점에 대해 볼록한지’를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전공에 걸맞은 일자리가 주어질 리 없다. 철학은 논리학이 없이는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지만 한국의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은 놀고먹어도 좋은 과목처럼 치부된다. 아니 고도의 지적훈련이 필요없는 아이들까지 전부 대학으로 쓸어 담는 것이 평준화된 한국이다. 인문계는 더구나 강단 좌익의 온상이다. 비판적 지력이 없으니 간단한 정치 구호만 머릿속에 박힌다.

좋은 연봉을 받으려면 소득의 원천도 글로벌화돼야 한다. 그러나 보편언어인 수학도 실용언어인 영어도 가르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조차 수학과 영어 시험을 쉽게 출제하라고 닦달이다. 국제 수준의 지식과는 점점 멀어진다. 좌우 가릴 것 없이 우물 안 개구리의 세계관만 가르친다. 좌익들은 시대착오적 공산주의를 가르친다. 시대착오적이어서 비교할 그 무엇도 없다. 사악하게도 그들은 학생들의 장래 생활개선이 아니라 오늘의 정치투쟁을 위해 교육을 수단으로 삼는다. 북한체제 찬양을 역사 교육이라고 부르는 정신질환자조차 수를 셀 수가 없다. 교과서의 기업가는 언제나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당으로 묘사된다. 

우익진영도 사정은 다를 것이 없다. 이들 중 일부는 인성교육을 강화하면 젊은이들이 체제순응적이 될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들은 인성교육진흥법까지 고안해 냈다. 백수들에게 농업사회적 효제충신 교육을 하자는 꼴이다. 조선 시대 양반붙이들의 썩은 냄새가 풀풀 난다. 반란과 저항은 그런 썩은 냄새가 나는 곳에서 무르익어 간다. 좋은 품성은 직업의 숙련과정을 통해 길러진다. “돈은 국가권력 아래에 있는 모든 것 중에 가장 신뢰할 만한 것”이라고 칸트가 말할 때의 신뢰가 바로 그렇게 형성되는 가치다.

정부는 동반성장, 경제민주화, 영세기업 및 골목상권 보호를 통해 비정규직과 알바와 임시직 등 허드렛일자리만 보호해왔다. 그리고 싸구려 교육을 통해 특목고 출신이 아닌 대부분 청년들을 싸구려 노동력으로 만들어왔다. 평준화 백수들은 지금 채울 것도 없는 자기소개서를 들고 울고 있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