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교계에도 AI 열풍이 거세다. 목회자들이 설교 준비에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성경 전문가라 하더라도 오랜 세월 축적된 성경 지식과 기독교 관련 자료의 방대함 앞에서는 매번 설교를 준비하는 일이 절대 쉽지 않다. 특히 한국교회는 예배가 많기로 유명하다. 새벽예배까지 있는 교회라면, 목회자는 사실상 하루도 쉴 틈이 없다. 예전에는 유명 목회자들이 함께 모여 한 달 치 설교를 책으로 엮어 보내주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그 일을 각자가 컴퓨터 앞에서 직접 하게 된 셈이다. “AI 설교에는 영성이 없다”라는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현실적으로 AI가 만들어 낸 설교문은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정교하고 풍성하다. 더욱이 같은 본문, 같은 제목, 같은 주제로 요청해도 AI는 결코 똑같은 설교를 반복하지 않는다. 똑같은 AI에게 백 편의 설교를 만들라 해도, 서로 다른 백 편이 나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명령어로 넣느냐’이다. 단순히 본문과 제목만 입력해도 설교를 작성해 주지만, 더 깊이 있게 활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설교의 개요와 목적, 청중의 특성, 결론 방향, 서론의 전개 방식, 사용할 예화의 종류, 참고할 통계나 신문 기사, 인용할 책의 주제까지 세밀하게 지시할 수 있다. 심지어 고대 문헌, 외국어 신학서, 히브리어나 헬라어 구문분석까지 덧붙이라고 명령하면 AI는 충실한 연구 비서로 변한다. 결국 핵심은 목회자가 어떤 의도와 신학적 방향을 가지고 AI에게 명령을 내리느냐에 달려 있다. 같은 도구라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교의 생명은 여전히 ‘전달’에 있다. 같은 원고라도 누가 어떻게 설교하느냐에 따라 청중의 반응은 완전히 달라진다.
문명은 언제나 삶을 바꾸고, 사고를 바꾸며, 사회와 국가, 그리고 인간 자신을 변화시킨다. 문명의 목적은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사람답게 만드는 데 있다. 증기기관은 인류를 막노동에서 해방했고, 전기와 통신은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 이제 AI는 그 연장선상에서 인류의 새로운 ‘조력자’로 등장하고 있다. 섬세한 AI를 탑재한 로봇과 시스템이 목회의 현장에도 들어올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은 더 존엄해지고, 더 영적으로 되며, 더 건강하고 안전해질 것이다. 이 모든 변화를 가능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