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면서 관계의 가치도 변했다. 과거에는 의무와 책임이 앞섰다면, 이제는 평안함이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함께 있을 때 편안하고, 행복하며, 떨어져 있을 때 그리운 관계야말로 얼마나 귀한가. 만약 자신의 일상에 이런 정서적 풍요로움이 부족하다면, 우리의 영혼은 잠재적 목마름으로 인해 지속적인 갈망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런 세월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심미적 혼돈과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질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사소하지만(그러나 반드시 사소하고 세심해야 한다), 희생적인 선행으로 주변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좋다. 그러면 그 사람은 우선 자기 자신과 매우 친밀한 사이가 된다. 스스로 자신을 악한 사람이 아닌, 선한 사람으로 인정하게 된다. 그것은 앞으로 만나게 될 많은 사람에게 선한 사람으로 다가갈 수 있는 용기와 정신적 근육을 만들어준다. 그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풀 때 그 주변 사람이 나에게 쉽게 호감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주변 사람들도 나를 친근하게 여기게 된다. 만약 사귀고 싶은 사람이 곁에 있다면, 먼저 그 주변에 있는 약자를 돕는 것이 지혜다.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 사이에 있는 작은 울타리가 쉽게 넘을 수 있는 친근한 울타리가 된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그들에게도 ‘최소한의 호의와 따뜻한 인사말’은 필수적이지만, 그 이상 접근한다든지, 쉽게 떨쳐버릴 수 있는 불쾌감 이상의 사건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아주 드물게 큰 희생을 치르게 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엮이게 되더라도, 앞에서 제시한 최소한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함이 지혜다. 그것은 또한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이 효과적으로 지켜지게 하는 안전장치가 된다.
오늘날 사람들은 관계의 질을 중시하지만, 그 안에는 위험한 함정도 있다. 적어도 나의 상대는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이다. 이는 관계의 근본 원칙인 겸손과 희생에 어긋난다. 세상에 나를 위한 너는 없다. 오직 너를 위해 존재하려는 나만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하신다. 그러므로 나는 너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누구든 이 원칙을 어기는 자는 결국 관계에서 실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