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이슬람국가는 정교일치 국가다. 인도는 민주화가 되었지만, 여전히 지배계급이 따로 있고, 불교는 속세를 떠나 있으며, 간혹 나라가 위태할 때는 호국불교가 된다. 가톨릭에서 교황은 바티칸 시국의 왕이며 전 세계 가톨릭교도의 정신적 왕이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사실 개신교 국가의 정신인 셈이다. 더구나 성경에는 정치적인 이야기가 많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적그리스도는 완전히 멸망할 것이며,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가 실현될 것이 계시 되어있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교회가 국가, 통치, 정당에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민주적이지도 않다. 교인뿐만 아니라 개교회에도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있다. 물론 교단마다 주장이 다를 수 있고, 교단은 같더라도 교회마다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서로 토론할 수는 있어도 주장이 다른 상대를 비난하거나 방해하거나 거짓으로 음해해서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세상에는 악한 사람도 많으므로 특히 국가는 국가 전복 세력에 대한 단호한 조처를 해야 하며, 체제에 도전하는 세력이 준동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잘 가동해야 한다. 나라는 악한 세력에게 휘둘리거나 그들의 주장에 뒤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 정의로운 자들은 힘겹더라도 선하고 정당하게 싸워야 한다. 플라톤은 ‘정치에 무관심한 가장 큰 벌은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받는 것’이라 일갈했다. 올바른 정치체제는 모든 국민의 삶의 질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정치영역에 대해서 교회는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계시 된 하나님의 통치 이념인 ‘공의’는 모든 나라가 실현해야 할 보편적 진리이다. 교회는 정치가 이 공의의 영역에서 벗어날 때 나팔을 불어야 한다. 불의와 사악한 문화 앞에 교회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정부가 시민을 억압하거나 악한 세력이 정권을 잡으려 할 때 교회는 분연히 일어나 정의의 편에서 외치고, 심지어 선한 싸움을 싸우고, 저항하며 기도해야 한다. 정의는 공짜가 아니다. 악과 싸우지 않는 나라에는 정의도 없고, 미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