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창세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신비롭고도 위험한 결정을 엿볼 수 있다. 창조를 마무리하시는 하나님은 이 놀랍고도 신비스러운 우주를 다스릴 자를 그리셨다. 마치 아들과 같고, 어여쁜 딸과도 같은 존재. 사랑이 사무치도록 간절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빚으시는 위험을 선택하셨다. 그것은 온전한 자녀를 향한 뜨거운 열망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것을 알진 못했고, 그래서 전능하진 않았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사랑의 표현으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선물하셨다. 그러나 이 자유는 자기 자신까지 태워버릴 수 있을 만큼 위험했기에, 하나님은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까지 준비하셨다. 그야말로 참 자유를 선물하신 셈이다. 참된 자유는 그것 자체로 막강하여 심지어 악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생명나무의 실과는 그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강력하여 인간의 생명을 영원히 지속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아담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선택했다면, 지금 인류는 온 우주를 다스리는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왜 아담과 하와가 서로 떨어져 있었는지 모르나 하와가 먼저 무모함을 선택하고 말았다. 아담 역시 악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싶었고, 결국 선악과를 선택했다. 불신은 거역을 잉태했고, 이는 교만으로 표출되었다. 결국 인간의 자유는 파멸로 귀결되었지만, 하나님의 자유는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열어 선택된 자를 그 파멸에서 구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는 대속적 희생을 감수하셨다. 희생을 치르며 사랑을 실천하신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믿고 십자가를 선택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되었다. 십자가의 속죄는 신비로운 정의와 진리를 창조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선택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간의 전쟁의 역사다. 이 전쟁은 언젠가 끝이 날 것이며, 참된 승리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어쩌면 우리는 자유의 대가로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된 셈이다. 참사랑과 자유, 그리고 진리를 갈망하는 자들만이 기꺼이 희생을 치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