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의 굴레: 오만과 비극의 오디세이
제2편
콘크리트 바벨탑: 부동산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약취 시스템

거짓된 성장은 반드시 진짜 폐허를 낳는다.
프롤로그: 두 개의 장면, 하나의 진실
2021년 9월, 광둥성 선전시 헝다(恒大) 그룹 본사 앞.
새벽부터 인파가 몰렸다. 손에는 플래카드를 들었고,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들은 헝다 아파트 수분양자들이었다. 일부는 평생 모은 돈을 쏟아부었고, 일부는 부모의 퇴직금까지 끌어다 계약금을 냈다. 그런데 집이 지어지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짓다가 멈췄다. 공사 현장에는 잡초가 자랐다. 그들이 외쳤다.
"내 돈 돌려줘! 내 집 돌려줘!"
— 2021년 9월, 헝다 본사 앞 수분양자 시위대의 외침
같은 시각,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서는 시진핑이 당 고위 간부들을 앞에 두고 새로운 구호를 천명하고 있었다. '공동부유(共同富裕, 함께 잘살자).' 중국의 성장 과실을 인민 모두가 나눠 갖겠다는 선언이었다.
두 장면을 잇는 거리는 불과 1,200킬로미터. 그러나 그 간극은 무한히 깊다. 한쪽에서는 인민의 전 재산이 증발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인민들과 '함께 잘살자'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이 간극이 바로 제2편의 주제다.
우리는 이 장에서 중국 부동산이라는 '콘크리트 바벨탑'이 어떻게 세워졌고, 그것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으며, 그 잔해 아래 14억 인민의 삶이 어떻게 압사당하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그리고 이 비극 뒤에서 조용히 웃고 있는 자들의 얼굴을 찾아낼 것이다.
1장. 성장의 마약: GDP라는 신기루를 쫓는 제국
1-1. 리커창의 비밀 메모: '진짜 GDP'를 아는 자

2007년 3월, 당시 랴오닝(遼寧)성 서기이던 리커창(李克強)은 미국 대사관에서 주중 미국 대사 클라크 랜트(Clark Randt)와 비밀 회동을 가졌다. 이 내용은 2010년 위키리크스가 외교 전문을 공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리커창은 그 자리에서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중국의 GDP 통계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따라서 참고용에 불과합니다.
저는 실제 경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세 가지 지표만 봅니다.
전력 소비량, 철도 화물 운송량, 그리고 은행 대출 규모.
나머지는 모두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 리커창(李克強), 주중 미국 대사와의 비밀 회동 (2007년)
이 발언은 '리커창 지수(Li Keqiang Index)'라는 이름으로 경제학계에서 유명해졌다. 중국 GDP 성장률의 실제를 의심하는 학자들이 이 세 가지 지표를 활용한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 발언의 주인공은 훗날 중국 국무원 총리(2013~2023)가 된 인물이라는 점이다. 즉, 중국 최고위 경제 책임자 본인이 자국 GDP 통계를 믿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 '만들어진 GDP'의 가장 큰 엔진은 무엇이었나. 바로 부동산이었다. 2000년대 들어 부동산과 그 연관 산업은 중국 GDP의 25~30%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지방 정부가 땅을 팔고 개발업체가 아파트를 올릴 때마다 GDP 수치는 화려하게 빛났다. 그 수치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나중의 문제였다.
1-2. 주룽지의 경고와 '토지 재정'의 탄생

1998년, 주룽지(朱鎔基) 총리는 중국 경제의 일대 개혁을 단행했다. 국영기업 개혁으로 수천만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고, 이들을 흡수할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했다. 주룽지가 선택한 해법은 주택 시장의 상업화였다. 국가가 배급하던 공공주택을 폐지하고, 인민들이 직접 집을 사고 파는 민간 시장을 만들었다.
이것은 당초 합리적인 개혁이었다. 하지만 그 부작용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규모로 자랐다.
중국의 모든 토지는 헌법상 국가 소유다. 따라서 '집을 판다'는 것은 사실 '70년짜리 토지사용권을 판다'는 의미다. 이 구조 안에서 지방정부는 토지사용권을 개발업체에 팔아 재정을 충당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이 '토지 재정'은 지방정부 수입의 40~60%를 차지하게 되었다. 지방 정부는 스스로 땅값을 올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 안에 갇혀버렸다.
주룽지는 말년에 이 부작용을 걱정했다. 2003년 그는 정부 보고서에서 경고했다. 그러나 부동산이라는 마차는 이미 달리기 시작한 후였다. 아무도 고삐를 잡으려 하지 않았다.
1-3. 2008년의 선물: 4조 위안이 낳은 괴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리먼 브라더스가 무너지고 세계 경제가 얼어붙었다. 당시 중국 최고 지도부는 전례 없는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결정했다. 4조 위안(당시 약 600조 원)을 쏟아붓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서 홀로 9% 성장률을 유지했고, '세계 경제의 구원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 4조 위안의 상당 부분이 흘러들어간 곳이 바로 부동산이었다. 이 돈이 부동산 거품을 걷잡을 수 없이 키웠다.
2008년의 '성공 경험'은 이후 중국 경제 정책의 고질병이 되었다. 경기가 흔들릴 때마다 유동성을 공급하고, 그 돈이 부동산으로 흘러가고, 집값이 오르고, 지방 정부 재정이 충당되는 순환이 반복되었다. 이 달콤한 사이클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아는 사람들은 소수였고, 그들의 경고는 묻혔다.
2장. 선분양제라는 합법적 사기: 도면만 보고 건네준 전 재산
2-1. 쉬자인(許家印)의 제국: 허난성 농촌 소년이 중국 최고 부호가 된 방법

1958년 9월, 허난성(河南省)의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돌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떴다. 쉬자인(許家印)—영어 이름 후이 카 얀(Hui Ka Yan)—이라는 이 아이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1982년 우한 과학기술대학 야금공학과를 졸업하고 제강소에 취직했다. 능력을 인정받아 공장장까지 올랐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1990년대 초, 그는 경제 특구로 뜨겁게 달아오르던 광둥성 선전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1997년, 헝다그룹(恒大集團)을 창업했다.
쉬자인의 성공 방정식은 단순하지만 대담했다. 최대한 많은 땅을 최대한 빠르게 사고, 그 땅 위에 최대한 빠르게 아파트를 올리고, 최대한 빠르게 팔아 다시 최대한 많은 땅을 산다. 이 과정에서 은행 대출은 '한도'가 없었다. 지방 정부와의 관계, 당 조직과의 연줄이 그 한도를 만들었다.
2017년, 쉬자인은 중국 최고 부호 자리에 올랐다. 개인 자산 422억 달러. 허난성 농촌의 고아 소년이 불과 20년 만에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인간이 된 것이다. 그는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2021년 7월)에 초대받아 천안문 광장의 귀빈석에 앉았다. 당의 인정을 받은 '홍색 자본가(紅色資本家)'의 상징이었다.
2-2. 선분양의 구조: 도면 한 장으로 전 재산을 받는 마법
헝다의 성공을 뒷받침한 것은 '선분양제(先分讓制)'였다. 땅을 산 직후, 심지어 땅을 파기도 전에 화려한 홍보 영상과 모델하우스를 세우고 분양을 시작했다. 인민들은 5년 후에 완공될 집을 사기 위해 오늘 전 재산을 냈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 받은 돈을 그 집을 짓는 데 써야 하는데,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헝다는 분양금을 받는 즉시 그 돈으로 새 땅을 샀다. 그 새 땅의 분양금으로 또 다른 땅을 샀다. 이 구조는 구매자가 계속 유입될 때만 작동하는 전형적인 폰지 게임이었다.
헝다가 이 게임을 하는 동안 그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커졌다. 전국 280개 이상 도시에서 1,300여 개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연 38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8,000여 개 협력업체가 헝다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마불사(大馬不死)'—너무 커서 죽을 수 없다—는 믿음이 시장 전체에 퍼졌다.
"나는 가진 것이 없어도 되지만,
부동산 소유자의 재산은 단 한 치라도 줄어선 안 됩니다."
— 쉬자인, 2021년 추석 직원들에게 보낸 서신
(디폴트 선언 직전 356조 원의 부채를 안은 채로)
그러나 이 장담은 지켜지지 않았다. 2020년 8월, 중국 정부는 '삼도홍선(三道紅線, 세 가지 부채 한도 규정)'을 도입했다. 부채가 너무 많은 개발업체에 대출을 제한하는 조치였다. 헝다는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위반한 '최악의 환자'였다. 대출이 막히자 돌려막기가 멈췄다. 2021년 12월, 헝다는 공식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부채 총액 450조 원 이상—중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기업 파산이었다.
2-3. 쉬자인의 말로: 2017년의 최고 부호, 2023년의 수용자
2017년, 중국 최고 부호. 2019년, 천안문 성루의 귀빈. 2021년, 디폴트의 주인공. 2023년 9월, 당국에 의해 구금.
쉬자인의 추락은 드라마틱하다. 그가 2009년 홍콩 증시 상장 이후 개인적으로 챙긴 배당금은 약 80억 달러(9조 원)에 달한다. 회사가 빚 더미에 앉아가는 동안에도 배당은 계속되었다. 2017~2018년, 부채가 1790억 달러에서 2430억 달러로 늘어나는 2년 동안 그가 받은 배당금은 40억 달러가 넘었다.
2024년 1월 29일, 홍콩 고등법원은 헝다에 청산 명령을 내렸다. 중국 역사상 최대 기업의 공식적 죽음이었다. 그러나 이 청산 명령이 수분양자들의 아파트를 완성해 줄 것인지는 아직도 불투명하다. 법원의 망치 소리가 울리는 동안, 선전 본사 앞의 수분양자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외치고 있었다.
'내 집 돌려줘.' 3장. '란웨이러우'와 '란웨이 하이즈': 멈춰버린 대륙의 심장 3-1. 67세 리주어 씨가 13층을 걸어 오르는 이유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밤 9시. 67세의 리주어(李主俄) 씨가 손전등을 켜고 아파트 계단을 오른다. 1층부터 13층까지. 불편한 다리로. 한 걸음씩. 이 아파트는 2013년 분양되었다. 1,200채. 리주어 씨는 결혼 후 부부 합산 전 재산을 털어 이 아파트를 샀다. 50만 위안(약 9,500만 원). 2016년, 건설사는 공사를 갑자기 중단했다. 2018년, 파산을 선언했다. 그러나 300가구 이상이 이 미완공 아파트에 입주해 살고 있다. 전기도, 수도도, 엘리베이터도 없다.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입주하지 않으면 집에 대한 법적 권리마저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이 바로 '란웨이러우(爛尾樓)'다. 글자 그대로 '썩은 꼬리 건물'. 2024년 현재 중국 전역의 란웨이러우는 수십만 채에 달한다. 미분양·미완공 주택을 합산하면 약 6,000만 채에 이른다는 블룸버그의 분석도 나왔다. 중국 전체 가구 수의 약 13%에 달하는 규모다. 3-2. 산둥성 30대 여성과 22층의 텐트 2024년 9월. 산둥성(山東省)의 한 30대 여성이 두 아이와 함께 미완공 아파트에 텐트를 쳤다. 콘크리트 바닥 위의 텐트. 아이들은 하루 두 번 22층 계단을 걸어 오르내리며 학교에 다닌다. 가스가 없어 장작으로 밥을 짓는다. 비가 오면 빗물을 받아 쓴다. 이 여성이 미친 것이 아니다. 부동산 개발사가 분양금을 받고 집을 짓지 못했다. 은행 대출 이자는 매달 나간다. 다른 집을 구할 돈도, 전셋값도 없다. 분양받은 집에 입주하지 않으면 '포기'로 간주되어 대출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으면서도 집은 못 받는 최악의 상황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텐트를 치고 들어간다.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집은 아직 집이 아니고, 빚은 이미 빚입니다." — 산시성 시안 란웨이러우 거주자 리커(李可), 인터뷰 (2022년) 3-3. 청년 실업률과 '란웨이 하이즈': 썩은 꼬리 아이들 란웨이러우가 물리적 공간의 비극이라면, '란웨이 하이즈(爛尾孩子)'는 한 세대 전체의 비극이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수십 개의 이력서를 넣었지만 일자리가 없다. 부모 세대는 집값이 오를 때 이미 아파트를 샀지만, 자식 세대는 그 집값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설령 돈을 모아도 사줄 집이 완공될지 알 수 없다. 월급의 70~80%를 집세에 쏟으며 고시원 같은 원룸에서 살고, 결혼은 포기하고, 아이는 꿈도 못 꾼다. 2023년 6월, 중국 청년(16~24세) 실업률이 21.3%를 기록했다. 다섯 명 중 한 명이 일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 직후 중국 국가통계국은 청년 실업률 통계 발표를 돌연 중단했다. 숫자가 나쁘면 숫자를 없애는 것—이것이 '가짜 천명'의 언어다. 이 절망이 낳은 사회 현상이 '탕핑(躺平)'이다. 탕핑은 '드러눕기'를 뜻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 이동이 불가능하고, 집도 살 수 없으며,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 차라리 최소한의 소비와 노동만 하며 누워버리겠다는 젊은 세대의 침묵하는 저항이다. "나는 일하지 않고, 소비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겠습니다.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이 내가 이 사회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 중국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된 탕핑 선언문 (2021년, 익명) 공산당은 탕핑을 금기어로 지정하고 관련 콘텐츠를 검열했다. '노력하면 된다', '분투가 행복이다'라는 구호로 덮으려 했다. 그러나 탕핑은 멈추지 않았다. 이 침묵하는 저항은 제5편에서 다룰 '문화적 공동화'와 직결된다. 4장. 출구 없는 감옥: 파산할 권리조차 박탈당한 인민 4-1. 지방 정부 부채의 블랙홀: 숨겨진 8,000조 원 내몽골 오르도스(鄂爾多斯). 인구 100만을 수용하기 위해 설계된 신도시 캉바스(康巴什). 수천 채의 아파트가 지어졌다. 넓은 도로가 깔렸다. 박물관, 도서관, 광장이 들어섰다. 그러나 사람이 없었다. 말 그대로 '유령 도시(鬼城)'가 탄생했다. 오르도스는 극단적인 사례지만 중국 전역에서 유사한 현상이 반복되었다. 지방 정부가 '경제 성장'이라는 실적을 만들기 위해 있지도 않은 수요를 예측하고 공급을 쏟아냈다. 빈 도시가 만들어질 때마다 GDP는 올랐고, 지방 관료는 승진했다. 이 과정에서 지방 정부는 막대한 빚을 졌다. '지방정부 자금조달기구(LGFV, 城投公司)'라는 유령 회사를 통해 은행 대출과 채권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중앙 정부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 '숨겨진 부채'는 IMF 추산 기준 약 66조 위안(약 1경 2,000조 원)에 달한다. 중국 GDP의 약 50%를 넘는 규모다. 지방 정부는 땅이 팔려야 빚을 갚는다. 땅을 팔려면 개발업체가 사야 한다. 개발업체가 사려면 아파트가 팔려야 한다. 아파트가 팔리려면 집값이 올라야 한다. 이 순환이 멈추는 순간, 도미노가 쓰러지기 시작한다. 2021년의 헝다 사태는 이 도미노의 첫 번째 패였다. 4-2. '실신인(失信人)': 현대판 주홍글씨와 디지털 연좌제 2016년, 중국 정부는 '사회 신용 시스템(社會信用體系)'을 전국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공식 명목은 '신뢰 사회 건설'—사기와 부패를 근절하고 사회적 신뢰를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의 가장 날카로운 날은 채무자들을 향했다. 대출을 갚지 못하면 '실신인(失信人, 신용불량자)'으로 등록된다. 그 순간부터 디지털 주홍글씨가 새겨진다. 실신인에게 적용되는 제한 조치들: • 고속철도, 비행기 탑승 금지 • 5성급 호텔, 고급 레스토랑 이용 금지 • 자녀의 사립 명문 학교 입학 제한 • 사업체 설립 및 고위 임원직 금지 • 전화 수신 시 상대방에게 '채무 불이행자'라는 음성 안내 자동 발송 • 부동산 구매 및 사치품 소비 금지 2024년 기준 실신인 명단에 등록된 인원은 약 800만 명. 이들 중 상당수는 부동산 거품의 피해자들이다. 분양금을 냈는데 집이 완공되지 않아 빚이 된 사람들, 집값 하락으로 대출 원금보다 집값이 낮아진 '깡통 주택' 보유자들이다. 이것이 이 비극의 가장 잔인한 아이러니다. 국가가 부동산 투자를 독려하고, 은행이 대출을 권장했다. 집값은 무조건 오른다는 신호를 수십 년간 보냈다. 그런데 거품이 터지자, 그 모든 책임은 '빚을 갚지 못하는 개인'에게 전가되었다. 사기를 설계한 자는 자유롭고, 사기에 당한 자가 '실신인'이 되는 구조다. "당신이 전화를 연결하고자 하는 상대방은 법원의 채무 불이행 판결을 받은 자입니다. 계속 연결하시겠습니까?" — 실신인에게 전화를 걸 때 나오는 자동 안내 음성 (중국 통신사 표준 시스템) 4-3. '이단'으로 분류된 경고자들: 앤트 파이낸셜과 마윈의 경우 2020년 10월 24일, 중국 최고의 민간 기업인 마윈(馬雲)이 상하이 와이탄 금융 서밋에서 연설했다. 그의 발언은 중국 금융 시스템을 향한 직격탄이었다. "오늘날 중국의 은행들은 모두 전당포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담보와 보증만 요구하죠. 그것은 혁신이 아닙니다. 우리에겐 진짜 금융 생태계가 필요합니다. 바젤 협약은 노인들의 클럽이 만든 노인들을 위한 규칙입니다." — 마윈, 상하이 와이탄 금융 서밋 연설 (2020년 10월 24일) 이 발언은 중국 금융 당국—즉 공산당—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었다. 열흘 후, 당국은 앤트 파이낸셜의 사상 최대 규모 IPO(370억 달러)를 상장 이틀 전에 전격 취소했다. 마윈은 공개 석상에서 사라졌다. 석 달 후 그는 홍콩 경제 프로그램에 잠시 모습을 드러내 '저는 아직 있습니다'라는 신호를 보내야 했다. 마윈의 몰락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중국 공산당은 부동산이라는 폰지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자를 '적'으로 규정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범죄가 되는 사회—이것이 '가짜 천명'이 지배하는 국가의 본질이다. 5장. '밥을 달라'는 절규: 부러진 성장의 날개 5-1. 리펑후이 사건: 디지털 주홍글씨에 맞선 한 사람의 분노 2022년 6월, 허난성 정저우(鄭州). 리펑후이(李鳳輝) 씨를 비롯한 수십만 명의 예금자들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지역 4개 농촌은행이 예금 인출을 전면 중단했다는 것이었다. 이 은행들은 사실상 지방 정부와 유착된 부동산 개발 자금을 돌리는 데 예금을 사용하고 있었다. 개발업체들이 무너지자 은행의 자금도 함께 묶였다. 인민들은 자신의 예금이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리펑후이와 피해자들이 정저우 은행 앞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그러자 정부는 놀라운 조치를 취했다. 시위대 수십 명의 건강코드(健康碼)—코로나19 방역 앱—를 '빨간색(고위험)'으로 강제 변환한 것이다. 빨간 건강코드가 뜨면 어디도 갈 수 없다. 버스도, 지하철도, 식당도. 예금을 돌려달라고 시위한 것이 '방역 위반'으로 처리된 것이다. "나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내 돈을 돌려받으러 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왜 나의 건강코드가 빨간색으로 바뀌었습니까?" — 허난성 예금자 시위 참가자 증언 (2022년 6월) 이 사건은 중국 내외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방역 시스템이 사회 통제 도구로 전용된다는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해당 공무원들은 기소되지 않았고, 예금 반환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불완전하다. 5-2. 주택담보 대출 거부 운동: '깡통 주택'의 반격 2022년 7월, 중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수십만 명의 주택 구매자들이 '모기지 상환을 거부하겠다'는 선언을 발표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채무 불이행이 아니었다. 하나의 저항이었다. 이들은 집을 지어주지 않는 건설사에 대출금을 계속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집을 짓지 못한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지 않음에도 은행 이자는 매달 청구된다는 분노였다. 이 '모기지 파업'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200개 이상 도시, 300개 이상 프로젝트의 구매자들이 연대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관련 게시물이 빠르게 검열로 삭제되었다. 그러나 삭제보다 빠르게 공유되었다. "우리는 신용을 지켰습니다. 계약대로 돈을 냈습니다. 그러나 집은 오지 않았습니다. 집이 없으면 대출도 없습니다." — 전국 주택담보 대출 거부 운동 성명서 일부 (2022년 7월) 5-3. 공무원 월급 체불과 '밥을 달라'는 절규 2023~2024년, 이제 위기는 개인을 넘어 국가 기관 자체를 덮쳤다. 구이저우(貴州), 헤이룽장(黑龍江), 지린(吉林), 허난(河南) 등 여러 성에서 지방 공무원들의 급여 지급이 중단되거나 삭감되었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학교 선생님의 월급이 수개월째 체불되었다. 퇴직 공무원의 연금 지급이 지연되었다. 지방 정부가 땅을 팔지 못해 현금이 말랐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의 정당성은 두 개의 기둥 위에 서 있다. 하나는 '강한 중국'이라는 민족주의적 자부심, 다른 하나는 '먹고 살 수 있다'는 물질적 약속이다. 두 번째 기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2023년 이후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밥을 달라(給飯吃)'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빈 밥그릇 사진을 올렸고, 어떤 이는 지방 정부 청사 앞에서 그 구호를 외쳤다. 이 외침의 의미는 단순한 배고픔이 아니다. '당신들이 약속했던 번영, 어디 있느냐'는 계약 파기의 선언이다.
"우리는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밥을 원합니다.", — 중국 소셜미디어 익명 게시물 (2023년) 6장. 바벨탑 위의 묵시록: 자업자득의 인과응보 6-1. 바벨탑의 성경적 교훈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바벨탑 이야기는 인류 최초의 부동산 버블 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 시날 평지에 모여든 사람들이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 했다. 하나님의 판단은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였다—이 교만한 기도를 그대로 두면 재앙이 된다는 뜻이었다. 중국의 부동산 바벨탑도 하늘에 닿으려 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들, 세계에서 가장 긴 고속철도망. '천하(天下)'의 중심임을 콘크리트로 증명하려 했다. 그러나 탑의 무게는 그 탑을 받치는 토대를 무너뜨렸다. 토대는 인민의 저축이었고, 인민의 미래였다. 바벨탑의 붕괴가 언어의 혼란을 낳았 듯, 중국 부동산 붕괴는 사회적 신뢰의 붕괴를 낳고 있다. 정부를 믿을 수 없고, 은행을 믿을 수 없고, 개발업체를 믿을 수 없으며, 통계를 믿을 수 없다. 이 신뢰의 붕괴가 경제적 수치보다 더 오래 가는 진짜 위기다. 6-2. 역사의 거울: 청나라 말 내무부 부패와 현대의 유사성 제1편에서 우리는 건륭제 시대의 화신이 청나라 12년치 세입을 부패로 축적했음을 보았다. 이 부패가 청나라 말 재정 파탄으로 이어졌고, 결국 '백년국치'의 토대가 되었다. 같은 구조가 오늘의 중국에서 다시 작동하고 있다. 부동산 개발업체 임원들이 선분양금을 받아 개인 계좌로 빼돌렸다. 지방 정부 관료들이 토지 사용권 계약 과정에서 뒷돈을 받았다. 은행 임원들이 부실 대출을 승인해 주고 이득을 취했다. 이 모든 부패의 청구서는 마지막에 누구에게 갔는가. 인민에게 갔다. 청나라 황실이 인민보다 체제의 생존을 우선시했듯, 공산당은 인민의 손실보다 시스템의 붕괴를 더 두려워한다. '대마불사'의 원칙이 작동하는 한,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은 보호받고 피해를 입은 자들은 방치된다. 결론: 무너진 약속, 그리고 남겨진 잔해 제2편에서 우리는 긴 여정을 걸었다. 리커창의 비밀 메모에서 시작해, 쉬자인의 제국 건설과 붕괴를 지나, 손전등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 67세 리주어 씨의 밤까지. 이 여정이 드러낸 것은 하나다. 중국의 부동산 사태는 시장의 실패가 아니었다. 국가가 설계하고 국가가 작동시킨 '약취 시스템'의 예정된 결말이었다. 토지는 국가 것이고, 은행은 국가 것이고, 개발업체는 국가와 결탁했으며, 규제는 국가가 결정했다. 이 모든 레버를 국가가 쥔 채로 벌어진 일이다. 가장 깊은 비극은 숫자가 아니다. 깡통 주택을 안고 실신인이 된 중년 부부, 22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아이들, 탕핑을 선택한 청년 세대—이들의 이야기가 진짜 비극이다. 국가가 약속한 '번영'이 실제로는 '착취'였음을 깨달은 인민들의 분노와 절망이다. 이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 공산당은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 단계의 도구를 이미 준비했다. 인민의 불만을 잠재울 또 다른 통제 수단—'영성의 탄압'과 '사상의 장악'. 이것이 제3편의 주제가 될 것이다. 물질적 풍요를 빼앗긴 인민에게 공산당은 무엇으로 복종을 강요하는가. 그 답은 단순하다. '진실을 볼 수 없게 하는 것'—그리고 '진실을 말할 수 없게 하는 것'. 양심을 마비시키면 분노도 잦아든다. 이것이 3편에서 우리가 해부할 '영성 탄압'의 논리다. "제국은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자국민을 괴롭히고 영혼을 파괴한 내부의 오만에 의해 무너진다." — 제3편으로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