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의 굴레: 오만과 비극의 오디세이
제3편
영혼 없는 거인: 영성 탄압과 도덕적 파산이 불러온 재앙

인간의 몸은 결박할 수 있어도, 영혼은 결박할 수 없다. 그것을 모르는 제국은 스스로 무너진다.
프롤로그: 1999년 7월의 밤과 1952년 4월의 새벽
1999년 7월 20일 새벽. 베이징, 톈진, 상하이, 선전. 중국 전역의 공안 기동대가 동시에 출동했다.
타깃은 무기도 폭탄도 아니었다. 공원에서 조용히 동작을 취하는 중년의 남녀들이었다.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이었다. 그들의 죄목은 '진(眞)·선(善)·인(忍)'—참됨, 선량함, 인내—을 실천한 것이었다.
그날 새벽 1만 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전국 라디오와 TV는 중단 없이 파룬궁 규탄 방송을 내보냈다.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은 상무위원 6명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독으로 이 결정을 내렸다. 그의 지령은 단호했다.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적으로 파탄 내며,
육체적으로 소멸하라."
— 장쩌민(江澤民), 파룬궁 탄압 내부 지령 (1999년)
47년 전으로 거슬러 오르면, 또 다른 새벽이 있었다. 1952년 4월 10일 새벽, 상하이. 공안이 한 남자를 체포했다. 뇌물공여, 국가재산 절취, 조세 회피. 죄목은 화려했지만 진짜 이유는 하나였다. 그가 세운 교회에 수십만 명이 모인다는 것이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워치만 니(倪柝聲, Watchman Nee)였다.
이 두 장면은 반세기를 가로질러 하나의 진실을 가리킨다. 중국 공산당은 일관되게, 집요하게, 체계적으로 인민의 '내면세계'를 두려워해 왔다. 그 두려움이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는 중국 영성 탄압의 본질이다.
왜 가장 강력한 군대와 감시망을 가진 국가가 기공(氣功)을 수련하는 노인들과 찬송을 부르는 신자들을 두려워하는가. 그 역설적인 공포의 심층을 제3편에서 해부한다.
1장. 왜 공산당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두려워하는가
1-1. 유물론 독재의 치명적 약점

마르크스주의의 토대는 유물론이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물질적 조건이 인간의 모든 사유를 결정한다는 명제다. 신(神)도, 영혼도, 초월적 진리도 없다. 있는 것은 오직 물질과 계급과 생산 관계뿐이다.
이 세계관이 권력과 결합하면 거대한 강점이 생긴다. 내세가 없으니 이 세상의 통제가 곧 전부다. 당이 이 세상을 장악하면 인민의 전 존재를 장악하는 것이 된다. 황제조차 '하늘'이라는 초월적 존재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시늉을 해야 했지만, 공산당은 하늘 자체를 없애버렸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치명적인 약점이 숨어 있다. '당보다 높은 존재는 없다'는 주장은, 당보다 높은 존재를 믿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나타나는 순간 무너진다. 파룬궁 수련자가 '진·선·인(眞善忍)'을 최고 가치로 삼는 순간, 당의 지령은 두 번째 우선순위로 밀린다. 가정교회 신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순간, 당의 명령은 조건부가 된다.
이것이 공산당이 영성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이유다. '충성심의 경쟁'에서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이 이길 수 없는 경쟁 상대—양심, 신앙, 진리—를 제거해야만 지배가 완성된다.
1-2. 마오의 유산: 문화대혁명과 '신(神)의 자리'를 차지한 당

1966년,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을 발동했다. 표적은 '봉건적·자본주의적 사상'—사실상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전통 정신문화였다.
홍위병(紅衛兵)들이 사원을 부수고 불상을 깨뜨렸다. 성경, 불경, 도덕경이 불태워졌다. 성직자들이 끌려나와 공개 비판 집회(批鬥會)에서 굴욕을 당했다. '파사구(破四舊, 낡은 사상·문화·풍속·습관을 타파하라)'의 이름으로 중국 5,000년의 정신적 유산이 10년 만에 대규모로 파괴되었다.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섰는가. 마오쩌둥 어록—『모택동어록』, 이른바 '소홍서(小紅書, 작은 빨간 책)'—이었다. 전국 인민이 매일 아침 어록을 암송했다. 사진을 집 벽에 걸었다. 지도자의 생일을 축하했다. 형식이 종교를 대체했고, 당이 신의 자리를 차지했다.
"마오 주석은 우리의 심장 속에 있습니다.
그분의 지시는 우리가 영원히 따를 최고의 진리입니다."
—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 선서문 (1966~1976년)
문화대혁명은 1976년 마오의 죽음과 함께 공식 종결되었다. 그러나 '당이 신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구조적 문법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시진핑의 사상을 헌법에 명시하고, 그의 어록을 교과서에 넣고, 그의 초상화가 교회 십자가 자리를 대신하는 현상은 문화대혁명의 디지털 판이다.
2장. 워치만 니의 유산: 자생적 신앙의 불씨
2-1. 푸저우의 소년이 세운 '하늘의 망루'

1903년 11월 4일, 중국 푸젠성(福建省) 푸저우(福州). 2세대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니퉈성(倪柝聲). 서방에는 '워치만 니(Watchman Nee, 파수꾼 니)'로 알려진 이 인물은 20세기 중국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존재가 될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수재였다. 1920년, 17세 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이후 그의 삶은 오직 하나의 방향으로 흘렀다. 중국 땅에 진정한 신약적 교회를 세우는 것.
워치만 니의 혁명성은 서구 교파의 권위를 거부한 데 있었다. 장로교도 감리교도 성공회도 아니었다. 오직 '그 도시의 교회(地方教會)'—각 도시에 하나의 교회만 존재해야 한다는 신약성경의 원리를 따른 것이었다. 이 자생적 신앙 운동은 서양 선교사에 의존하지 않고 중국인 스스로의 영성으로 자라났다. 그것이 공산당에게 특히 위험했다. '외세의 침략 도구'라는 프레임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49년 공산 혁명이 완성될 때까지, 워치만 니의 사역을 통해 중국 본토와 동남아시아에 600개 이상의 지방교회가 세워졌다. 수십만 명의 신자가 그의 저술을 읽었다. 그의 책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훗날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기독교 고전이 된다.
2-2. 1952년의 체포: '뇌물'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신앙 박해
1949년 공산당이 집권했다. 워치만 니는 도망치지 않았다. 핵심 동역자들을 대만과 해외로 보내 사역을 이어가게 하면서, 그 자신은 중국 본토에 남아 '주님의 간증을 지키겠다'고 했다. 이 결정이 그의 운명을 결정했다.
"나는 대륙에 남을 것입니다.
내가 도망친다면 양 떼는 누가 돌보겠습니까.
주님이 내게 이 땅에 머물러 그분의 간증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 워치만 니, 1949년 동역자들에게 한 말 (전기 및 증언 기록에 근거)
1952년 4월 10일 새벽. 공안이 상하이에서 그를 체포했다. 죄목은 뇌물공여, 국가재산 절취, 조세 회피, 정부계약 사취. 화려한 죄목들이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진짜 이유는 그가 세운 교회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인다는 것이었다.
재판은 요식 행위였다. 1956년 6월 21일, 그는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상하이 감옥, 이후 노동개혁 수용소를 거치며 옥중 생활이 이어졌다. 당국은 신앙을 포기하면 석방해 주겠다는 회유를 반복했다. 그는 모든 기회를 거부했다.
1971년 11월, 아내 장핀훼이(張品蕙)가 세상을 떠났다. 워치만 니는 면회도 허락받지 못한 채 홀로 그 소식을 들었다. 1972년 5월 30일, 그는 안후이성 백마오링 노동수용소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향년 69세. 20년의 옥중 생활 끝에 맞은 죽음이었다.
그가 죽은 뒤 질녀가 유품을 가지러 수용소를 찾았다. 간수는 그녀에게 작은 종이 조각 하나를 건네주었다. 워치만 니의 마지막 글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구속을 위해 죽으셨고,
삼일 후에 부활하셨다.
이것은 우주 안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나의 신앙으로 인하여 죽는다."
— 워치만 니(倪柝聲), 순교 직전 마지막 메모 (1972년)
20년의 감옥이 끝낼 수 없었던 것. 그것이 영성의 힘이다. 워치만 니가 죽은 뒤에도 그의 책들은 지하에서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었다. 그의 사역에서 뻗어 나온 지방교회는 오늘날 전 세계 6대주에 3,000개 이상 세워졌다. 공산당이 20년 동안 감옥에 가두어 죽인 사람이 남긴 유산이다.
2-3. 삼자교회(三自教會): 십자가 위에 오성홍기를 올리다

공산당은 종교를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택한 전략은 '통제 가능한 종교만 허용하는 것'이었다. 1954년, 삼자애국운동(三自愛國運動)이 출범했다. '자치(自治)·자양(自養)·자전(自傳)'—스스로 다스리고, 스스로 먹이고, 스스로 전파한다. 외국 세력과 관계를 끊고 국가의 감독 아래 운영하는 교회만 합법으로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2018년, 시진핑은 이 통제를 한 단계 더 강화했다. '종교의 중국화(宗教中國化)' 정책이었다. 그 내용은 노골적이었다. 교회 십자가를 내리고 오성홍기를 걸어라. 성경 구절 대신 시진핑 어록을 가르쳐라. 설교 내용은 당의 검토를 받아라. 18세 미만 미성년자의 교회 출입을 금지하라.
"종교는 중국 특색에 맞게 적응해야 한다.
사회주의 사회에 적응하도록 종교를 인도해야 한다."
— 시진핑, 전국종교공작회의 연설 (2016년 4월 23일)
이것은 종교의 '중국화'가 아니다. 종교의 '당화(黨化)'다. 영혼의 영역을 당의 부서로 편입하려는 시도다. 신의 자리에 당을 앉히려 한 마오의 유산이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법령으로 정교하게 완성된 것이다.
이 정책에 따르지 않는 수천 개의 가정교회(家庭教會)는 불법 집회로 단속된다. 신자들은 벌금과 구금을 감수한다. 그러나 워치만 니가 보여준 것처럼, 지하의 신앙은 박해받을수록 더 깊어진다. 공산당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더욱 집요해진다.
3장. 장쩌민의 공포: 파룬궁과 1억 명의 양심
3-1. 1999년 4월 25일: 중난하이 앞에 선 1만 명

1999년 4월 25일 이른 아침.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 담장 앞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한 명, 열 명, 백 명, 천 명. 해가 뜨자 1만 명을 넘어섰다. 파룬궁 수련자들이었다.
그들은 아무런 플래카드도 들지 않았다.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 조용히 서서 정부와의 대화를 기다렸다. 요구는 하나였다. 톈진에서 불법 체포된 수련자들을 석방하고, 파룬궁에 대한 탄압을 중단해 달라는 것이었다. 주룽지 총리가 나와 대화했고, 그들은 질서 있게 해산했다. 어떠한 충돌도 없었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집회가 장쩌민을 공포에 빠뜨렸다. 문제는 수련자 수였다. 정부 집계로도 1억 명 이상—공산당원 7,000만 명을 가볍게 넘어서는 숫자였다. '국가 기관보다 더 많은 사람을 모은 조직'이 중국 땅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공산당에게 생존의 위협이었다.
"파룬궁이 공산당과 인심(人心)을 쟁탈하고 있다."
— 장쩌민이 파룬궁 탄압을 정당화하며 사용한 표현
3-2. '진·선·인'이 범죄가 되다: 610 사무실의 탄생
1999년 6월 10일. 장쩌민은 파룬궁 탄압을 전담할 비밀 조직을 만들었다. 이름도 없이 설립일 날짜를 따서 '610 사무실(六一○辦公室)'이라 불렸다. 구조상 경찰청, 법원, 검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초법적 기구였다. 당의 지령으로만 움직였다.
7월 20일, 전국 동시 체포가 시작되었다. 그 이후 진행된 탄압의 규모는 가늠하기 어렵다. 최소 수십만 명이 구금되었고, 수천 명이 구금 중 사망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고문, 강제 노동, 정신과 약물 강제 투여가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다.
그러나 이 탄압에서 가장 충격적인 혐의는 강제 장기 적출이었다. 2006년, 캐나다 전 국무지원장관 데이비드 킬구어(David Kilgour)와 국제 인권 변호사 데이비드 마타스(David Matas)는 공동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중국에서 대규모 강제 장기 적출이 실재하며, 파룬궁 수련자들이 주요 피해 집단이라는 것이었다.
2019년, 영국 런던에 설립된 독립 재판소 '중국 재판소(China Tribunal)'가 8개월간의 조사 끝에 판결을 내렸다. 재판장은 구 유고슬라비아 전범재판소 검사 출신의 칙선변호사 제프리 나이스 경(Sir Geoffrey Nice)이었다.
"중국에서 이식용 장기 공급을 위해
수감자에 대한 살해가 계속되고 있으며,
파룬궁 수련자들과 위구르족에 대한
반인도범죄(crimes against humanity)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
— 중국 재판소(China Tribunal), 런던 판결문 (2019년 6월 17일)
파룬궁 수련자들이 장기 적출의 표적이 된 데에는 잔인한 이유가 있다고 연구자들은 지적한다. 이들이 '진·선·인'의 원칙에 따라 절제된 생활을 해왔기에 신체 상태가 매우 좋았다는 것이다. 건강한 장기—이것이 그들의 죄였다.
3-3. 션윈(神韻): 탄압당한 문화의 역습

2006년, 뉴욕. 해외로 탈출한 파룬궁 수련자들이 하나의 예술단체를 만들었다. '션윈(神韻, Shen Yun) 예술단'이었다. 목표는 분명했다. 공산당이 문화대혁명을 통해 파괴하기 이전의 '진정한 중국 전통문화'—5,000년 신전(神傳) 문화—를 무대 위에 복원하는 것.
션윈의 공연은 화려하고 정밀했다. 정통 한족 복식, 소수민족의 민속 무용, 불교와 도교의 이야기, 그리고 현대 중국의 박해 장면. 마지막 부분—파룬궁 수련자들이 신념을 지키다 탄압당하는 장면—이 핵심이었다. '이것이 오늘의 중국이다'라는 고발이었다.
공산당은 즉각 반응했다. 전 세계 중국 영사관이 션윈 공연 개최 예정인 극장들에 압력을 넣었다. 공연 취소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일부 극장에서는 실제로 공연이 취소되었다. 그 집요한 방해 공작은 역설적으로 션윈의 존재를 더 크게 알렸다.
"공산당이 우리를 방해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우리가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것이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감추고 싶어 하는 진실."
— 션윈 예술단 관계자 성명
션윈은 단순한 예술 공연이 아니다. 공산당이 '공산당 = 중국'이라고 선전해 왔던 거짓에 대한 반박이다. 공산당이 중국 역사를 지배하기 훨씬 이전에, 수천 년의 찬란한 정신문화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리고 그 문화를 파괴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고발하는 목소리다. 그것이 공산당이 이 화려한 무용단을 세계 최고의 위협 대상으로 여기는 이유다.
4장. 디지털 판옵티콘: 양심을 대신하는 사회 신용 시스템
4-1. 제러미 벤담의 '감옥'이 14억 인민에게 씌워지다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은 '판옵티콘(Panopticon)'이라는 감옥 구조를 설계했다. 중앙의 감시탑에서 모든 죄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구조. 죄수들은 언제 감시당하는지 알 수 없으므로, 항상 감시당한다고 느끼며 스스로를 규율한다.
2016년 이후 중국은 이 18세기의 감옥 철학을 14억 인민에게 디지털로 구현하기 시작했다. '사회 신용 시스템(社會信用體系)'이다. 도시마다 설치된 수억 개의 CCTV 카메라가 안면 인식 AI와 연결된다. 교통 위반, 무단횡단, 쓰레기 무단 투기가 자동으로 기록된다. 온라인에 당을 비판하는 글을 올려도 기록된다.
신용 점수가 낮아지면 고속철도와 비행기 탑승이 제한된다. 좋은 학교에 자녀를 보내지 못한다. 대출을 받지 못한다. 반대로 점수가 높으면 이자 할인, 공공시설 우선 이용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인간의 행동을 숫자로 환산하고, 그 숫자가 삶의 가능성을 결정하는 것이다.
4-2. '하늘이 보고 있다'를 알고리즘으로 대체한 결과
전통 종교는 '하늘이 보고 있다(天知地知)'는 믿음으로 인간의 행동을 규율했다. 초월적 존재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살고자 하는 내면의 동기가 도덕의 원천이었다.
공산당은 이 내면의 동기를 외부의 감시로 대체했다. 카메라가 보고 있다. 알고리즘이 기록한다. 걸리면 점수가 깎인다. 이 구조에서 인민들은 '착해서' 착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걸리지 않으려고' 착한 척 행동한다.
"나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단지 카메라 앞에서만."
— 중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퍼진 자조적 유행어 (2020년대)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결과는 천양지차다. 내면의 도덕이 사라진 사회에서 '걸리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 개인의 핵심 생존 전략이 된다. 분식 회계, 품질 위조, 안전 기준 외면, 시험 부정—이 모든 것은 '들키지 않으면 괜찮다'는 논리에서 자란다. 국방 예산을 횡령하고 가짜 무기 보고서를 올리는 행태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제4편에서 다룰 '부패한 방패'의 뿌리다.
4-3. 인민의 미러링: 서로를 감시하는 사회
사회 신용 시스템의 가장 정교한 통제 장치는 인민들이 서로를 감시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웃의 행동을 신고하면 점수를 받는다. 고발이 미덕이 된다.
이것은 문화대혁명 시기의 재현이다. 당시 홍위병들이 교사를, 부모를, 이웃을 고발했다. '당에 대한 충성심'이 가족보다 우선이었다. 디지털 판옵티콘 아래에서 이 구조가 알고리즘으로 자동화된다. 신고자에게 포인트가 쌓이고, 피신고자는 점수가 깎인다.
이 시스템의 궁극적 목표는 내면의 도덕을 아예 무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양심이 없어도 된다. 카메라가 다 본다. 영혼이 없어도 된다. 알고리즘이 행동을 규정한다. 그 결과가 어떤 사회를 만드는지—제2편의 부동산 사기와 제3편의 국방 비리가 보여주고 있다.
5장. 도덕적 파산의 청구서: 거짓이 지배하는 나라
5-1. '멜라민 분유' 사건: 양심 없는 사회의 자화상
2008년 9월. 중국 전역에서 영아 신장 결석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원인이 밝혀졌다. 허베이성의 산루(三鹿) 분유 회사가 단백질 함유량을 부풀리기 위해 공업용 화학물질 멜라민을 분유에 첨가한 것이었다. 피해 영아는 30만 명. 이 중 최소 6명이 사망했다.
산루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중국 주요 유제품 회사 22개 중 21개 제품에서 멜라민이 검출되었다. 업계 관행이었던 것이다.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논리가 수십만 영아의 신장을 파괴했다.
이 사건은 국방 무기 부정부패, 의약품 위조, 가짜 건설 자재(두부 건물)와 하나의 뿌리를 가진다. 내면의 도덕이 아닌 외부의 감시에만 의존하는 사회에서, 감시의 틈을 노리는 것이 '합리적 행동'이 된다. 내 아이에게 먹일 분유를 만드는 사람도 이 논리로 멜라민을 넣는다.
5-2. '두부 건물(豆腐渣工程)'과 쓰촨 대지진

2008년 5월 12일. 쓰촨성(四川省) 대지진. 리히터 규모 8.0. 사망 및 실종자 87,000명. 중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자연재해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비극 안에 또 다른 비극이 있었다. 인근 성의 건물들은 살아남았는데, 유독 학교 건물들이 집중적으로 무너졌다는 점이었다. 5,000명 이상의 학생이 학교 건물 잔해 아래 목숨을 잃었다. 조사 결과, 해당 학교 건물들은 불량 철근과 모래 섞인 시멘트로 지어진 '두부 건물(豆腐渣工程, 두부처럼 물렁한 건물)'이었다. 건설 예산의 상당 부분이 공무원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간 것이었다.
"내 아이가 죽었습니다.
그 옆 창고는 멀쩡히 서 있는데,
학교만 무너졌습니다.
어디선가 돈이 사라진 것입니다."
— 쓰촨 지진 유가족, 시위 현장 인터뷰 (2008년 5월)
분노한 유가족들이 거리로 나왔다. 당국은 이들의 시위를 강제 해산했다. 진상 규명을 요구한 기자들과 블로거들을 구금했다. 정부 조사 결과 보고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영혼이 없는 사회가 아이들을 죽였고, 권력이 그 진실을 덮었다.
5-3. 국방 비리: 도덕 파산이 만든 '종이 호랑이' 군대
2023년, 시진핑은 중국 인민해방군 로켓군(核心전략무기 담당) 사령관을 포함한 고위 장성 수명을 전격 해임했다. 구체적 이유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대규모 군사 비리가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미사일 연료탱크에 물을 채웠다는 보고, 첨단 전자 장비를 불량품으로 납품하고 예산을 착복했다는 의혹이 흘러나왔다. '가짜 반도체, 가짜 무기'—진짜라고 보고서에 적혀 있지만, 실전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장비들. 예산의 1%만 실제 기술에 투입하고 나머지는 중간에서 사라진다는 '1%의 법칙'은 오랫동안 내부 기밀처럼 회자되어 왔다.
"군대는 전쟁이 아닌 부패와 싸우고 있다.
진짜 전쟁이 벌어지면 무엇을 쏠 것인가—
반죽인가, 녹슨 고철인가?"
— 중국 군사 전문가의 익명 논평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인용)
이것은 개인의 탐욕이 낳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하늘이 보고 있다'는 내면의 억제력이 사라진 사회가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곳이다. 멜라민 분유, 두부 건물, 가짜 무기—이 모든 것은 하나의 뿌리에서 자란다. 영혼이 없는 사회의 자화상이다.
결론: 거인의 발은 진흙으로 되어 있다

구약성경 다니엘서 2장에 기록된 느부갓네살의 꿈. 거대한 신상이 있었다.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다리는 철이었다. 그런데 발은 철과 진흙이 섞여 있었다. 다니엘이 해석했다. '발이 진흙으로 되어 있으므로, 이 나라는 분열될 것이다.'
오늘의 중국은 이 신상을 닮았다. 머리는 화려한 GDP와 군사력으로 빛난다. 몸통은 세계 최대의 인구와 영토를 자랑한다. 그러나 발은 진흙으로 되어 있다. 영성이 거세된 인민들의 도덕적 공허함,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적 불신, 거짓 보고서로 운영되는 국가 시스템이 그 진흙이다.
워치만 니는 20년의 감옥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파룬궁 수련자들은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진·선·인'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름 없는 가정교회 신자들은 지하에서 성경을 펴고 기도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것은 역설이다. 가장 강한 억압을 받는 자들이 가장 강한 영혼을 보여준다. 억압이 강할수록 영혼의 저항도 깊어진다.
공산당의 딜레마는 여기 있다. 영성을 탄압하면 도덕이 무너진다. 도덕이 무너지면 국가 시스템이 부패한다. 부패가 만연하면 군대도, 경제도, 사회도 속은 빈 채로 겉만 유지된다. 그 속 빈 강정이 어떻게 터지는지는 제4편—군사력과 금융 패권의 실체—에서 보게 될 것이다.
"인민의 몸은 결박할 수 있어도,
영혼은 결박할 수 없다.
그것을 모르는 제국은
필연적으로 스스로 무너진다."
— 제4편으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