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의 가위질
1900년 8월, 니체가 세상을 떠났다. 그 순간부터 한 여인의 시대가 시작됐다. 여동생 엘리자베트 푀르스터-니체(Elisabeth Förster-Nietzsche). 그녀는 오빠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그의 삶에 끊임없이 개입했던 인물이다. 이제 오빠가 없으니, 그의 유산 전체가 그녀의 손에 넘어왔다.
엘리자베트에게는 이미 분명한 이념이 있었다. 그녀는 반유대주의자였고 독일 민족주의자였다. 남편 베른하르트 푀르스터와 함께 파라과이로 건너가 순수 독일인 식민지 "노이에 게르마니아(Nueva Germania)"를 건설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남편은 빚더미 위에서 자살했고, 엘리자베트는 독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그녀에게는 오빠의 유산이 있었다. 106권의 노트, 수십 편의 미발표 원고, 그리고 유럽 지식인 사회가 막 주목하기 시작한 이름 — 프리드리히 니체.
엘리자베트는 오빠의 노트를 펼쳤다. 수천 개의 메모들. 니체가 쓰다 버린 것들, 다듬다 포기한 것들, 모순되는 것들, 순간의 감정으로 적은 것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가위를 들었다. 자신의 이념에 맞는 단편들을 골랐다. 이어붙였다. 제목을 달았다 — 『권력에의 의지(Der Wille zur Macht)』. 그리고 이것이 니체의 미완성 주저(主著)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 책은 니체의 책이 아니었다. 니체가 쓰다 버린 메모 조각들을 엘리자베트가 편집한 책이었다. 나중에 학자들이 원본 노트를 조사했을 때, 엘리자베트가 얼마나 선택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편집했는지가 드러났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편집의 방향이었다. 니체가 명시적으로 반대했던 것들 — 반유대주의, 독일 민족주의, 전쟁 예찬 — 이 마치 니체의 주장인 것처럼 포장되었다. 니체 본인은 이런 것들을 경멸했다. 그의 편지 곳곳에 "나는 독일인이기를 거부한다", "반유대주의자들과는 어떤 관계도 맺지 않겠다"는 말이 있다.
니체는 자신이 가장 혐오한 것들의 철학적 대부(代父)가 되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혈육의 손에 의해.
히틀러와 니체의 지팡이
1933년, 히틀러가 독일 총리가 되었다. 나치 체제가 시작됐다. 그리고 엘리자베트 니체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히틀러에게 오빠가 평생 애용하던 지팡이를 선물했다. 히틀러는 바이마르에 있는 니체 기록보관소를 방문해 니체의 흰 대리석 흉상을 응시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은 독일 전역에 배포되었다. 메시지는 명확했다. "우리 나치즘은 니체의 철학을 실현하는 운동이다."
"초인(위버멘쉬)" — 니체에게 이것은 자기극복의 심리적 개념이었다. 나치에게 이것은 아리아 인종의 우월한 전사가 되었다.
"권력에의 의지" — 니체에게 이것은 생명력과 창조성의 은유였다. 나치에게 이것은 무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욕망의 철학적 근거가 되었다.
"약자의 도덕을 넘어서라" — 니체에게 이것은 자기기만적 삶에 대한 심리학적 비판이었다. 나치에게 이것은 약자, 장애인, 유대인을 제거하는 것의 정당화가 되었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독일 병사들의 배낭 안에는 두 권의 책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신의 책 성경과, 그것을 대체하려 했던 니체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함께 전쟁터로 갔다.
6천만 명이 죽은 2차 세계대전.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된 홀로코스트. 이 모든 것의 한 켠에 오해된 니체가 있었다.
니체는 유대인을 혐오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대인의 지적 전통을 존중했다. 그는 독일 민족주의를 경멸했다. 전쟁을 예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과 반대되는 것들의 이름으로 그의 이름이 불렸다.
1935년 베를린. 한 고등학생이 철학 수업에서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를 읽는다. 교사는 이것이 게르만 민족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철학이라고 가르친다. 학생은 열정을 느낀다. 10년 후 그는 동부 전선에서 싸울 것이다. 그가 읽은 것은 니체가 아니었다. 엘리자베트가 만들고 나치가 채색한 가짜 니체였다.
다섯 겹의 오해 — 완성된 비극
이 이야기 전체를 돌아보면, 니체는 다섯 겹의 오해 속에 갇혀 있다. 이 오해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것은, 마치 인간들이 아무렇게나 검붉은 여러 가지 색체들을 혼합한 채 캔버스에 이리저리 휘갈긴 수채화와 같이 당시의 세상을 설명하고 있다.
니체가 "신 없는 세계는 재앙이다"라고 경고했는데, 사람들은 "신이 없다고 했네, 잘됐다!"로 들었다. 의사의 경고를 허락으로 들은 것이다.
"저 박식한 니체도 신은 없다고 했으니, 우리가 신 없이 사는 것은 지적으로 세련된 태도다." 권위를 빌려 자신의 불신앙을 정당화했다.
그가 가장 혐오한 반유대주의와 독일 민족주의의 철학적 근거로 도용됐다. 이것은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의도적 왜곡이었다. 엘리자베트의 가위가 만든 가짜 니체였다.
"지혜로운 금언집이네!" 그의 아포리즘들이 자기계발 문구로 소비된다. 심연을 걷어내고 자극적인 파편만 뽑아 쓴다. 이것도 오해다.
그는 자신을 디오니소스로 알았지만, 마지막에 "십자가에 달린 자"라 서명했다. 르상티망을 해부했지만 자신의 르상티망을 보지 못했다. 강함을 설파했지만 가장 약한 방식으로 쓰러졌다.
이 다섯 겹의 오해는 단순히 니체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20세기 유럽 문명이 어떻게 스스로를 오해했는지를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신을 지웠다. 그 자리에 민족을 세웠다. 민족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6천만 명이 죽었다. 그리고 그 과정의 지적 배경에, 의도치 않게 오해된 니체가 있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전쟁이 끝난 후 — 진짜 니체를 찾아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유럽은 폐허였다. 그리고 철학계에서 하나의 작업이 시작됐다. 나치에 의해 오염된 니체를 다시 원래대로 복원하는 작업.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발터 카우프만(Walter Kaufmann)이라는 독일계 유대인 철학자였다. 나치 독일에서 미국으로 피신한 그는, 1950년 『니체: 철학자, 심리학자, 반(反)그리스도』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나치의 니체 해석이 얼마나 조작된 것인지를 꼼꼼하게 밝혔다.
니체는 반유대주의를 혐오했다는 것. 독일 민족주의를 경멸했다는 것. 전쟁보다 정신의 자유를 높이 샀다는 것. 초인은 인종적 우월자가 아니라 자기극복의 심리적 개념이라는 것.
이 복원 작업을 통해 드러난 진짜 니체는, 나치의 니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고독하고, 훨씬 더 슬픈 인물이었다.
진짜 니체는 오해 속에서 죽었고, 오해 속에서 전쟁의 도구로 쓰였고, 이제야 겨우 조금씩 이해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해도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
1960년대 이후, 니체는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탈구조주의 등 20세기 사상의 핵심 원천이 되었다. 사르트르, 카뮈, 푸코, 데리다. 이들이 모두 니체에게서 출발했다. 지금도 전 세계 대학의 철학과에서 니체는 필독 저자다.
그러나 이 지적 영향력도 니체가 의도한 것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그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추종자들이 아니었다. 그는 독자들이 자신의 책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원했다. "나를 따르지 말라. 각자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라"고 썼다.
그마저도, 아무도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니체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 3편의 이야기를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니체는 나쁜 사람인가? 아니면 불행한 사람인가?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다섯 살에 잃고, 다섯 여인들 사이에서 자라고, 신앙의 껍데기만 보고, 바그너에게 배신당하고, 살로메에게 거절당하고, 책은 팔리지 않고, 몸은 점점 아파지고, 마지막에는 정신까지 무너진 사람.
그가 평생 가졌던 질문들은 사실 매우 중요한 것들이었다.
"왜 세상은 이렇게 불공평한가?" "고통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자기기만 없이 정직하게 살 수 있는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것들은 성경도 다루는 질문들이다. 욥이 물었고, 시편 기자가 물었고, 전도서가 물었다. 그 질문들을 니체도 물었다. 그리고 거기까지는 옳았다.
그런데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방향에서 그는 돌아섰다. 하나님 쪽으로 가지 않고, 자기 자신 쪽으로 갔다. 커튼이 너무 많았고, 아버지가 너무 일찍 갔고,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보여줄 사람이 그의 삶에 없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이 말씀을 니체에게 들려줄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규칙으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제도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살아있는 복음. 커튼이 아니라 실제 그분을 보여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물론 우리는 알 수 없다. 사람의 내면의 선택은 결국 그 사람 자신의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 니체가 가졌던 질문들은 복음이 이미 답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는 올바른 질문들을 가지고, 올바른 답을 찾지 못한 채 떠난 사람이었다.
에필로그 — 검붉은 수채화를 다시 보며
니체의 이야기는 마치 1,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질 세계가 그려낸 검붉은 수채화 같은 이야기다. 수채화는 물감이 번진다.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경계를 넘어, 다른 색과 섞인다. 니체가 뿌린 철학의 물감은 그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번졌다. 경고가 선언이 되었고, 경멸이 찬양이 되었고, 고독한 한 인간의 절규가 수천만 명을 죽인 전쟁의 음악이 되었다.
그러나 수채화는 또한 이런 것이기도 하다 — 그 번짐 속에서도 원래의 붓터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잘 들여다보면, 처음의 의도가 보인다. 니체의 경우, 그 처음의 붓터치는 이것이다. 고통받는 세계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던 한 인간. 아버지를 잃고, 신앙의 껍데기에 상처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물음을 놓지 않았던 한 영혼.
그리고 그 마지막 서명 — "십자가에 달린 자."
예수 곁에는 두 사람이 달려 있었다. 한 사람은 "네가 그리스도라면 우리를 구원하라"고 조롱했고, 한 사람은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청원했다. 두 사람 모두 십자가 위에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방향이 달랐다.
니체는 어느 쪽이었는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런데 한 가지는 안다 — 그도 결국 십자가 곁에서 생을 마쳤다는 것. 달아난 자도, 결국 십자가 곁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니체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그의 철학이 아니다. 그의 답이 아니라 그의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복음의 답을 필요로 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도 있다. 니체를 왜곡한 것은 악의를 가진 외부인이 아니었다. 그의 가장 가까운 여동생이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빌려, 우리 자신의 이념을 정당화하는 일이 얼마나 쉽게 일어나는지 — 니체의 이야기가 그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