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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 누가 그를 싫어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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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5-0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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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 심리 · 문화 분석

마이클 잭슨: 누가 그를 싫어했을까?

한 천재의 삶으로 읽는 인간의 조건 — 신학·심리·문화를 넘나드는 이야기
선린교회 | sunlin.kr

1. 시작하며 — 왜 마이클 잭슨인가

1983년 3월 25일 밤. 전 세계 수억 명이 TV 앞에 앉아 있었다. 모타운 레코드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검은 정장에 흰 양말, 중절모를 쓴 청년이 무대에 올랐다. 노래가 절정에 달했을 때, 그는 발끝으로 서서 뒤로 미끄러지듯 걸었다. 문워크였다. 그 순간 객석이 폭발했고, 세계는 그 장면을 영원히 기억하게 되었다.

마이클 잭슨. 그는 단순한 팝스타가 아니었다. 그는 현상이었다. 20세기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퍼포머 중 한 명이었고, 동시에 가장 잔인하게 소비된 인간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토록 위대한 예술가에게 세상은 따뜻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요하고 잔인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의혹과 비난과 조롱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이 글은 그의 음악을 칭송하기 위한 것도, 그를 무조건 변호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한 인간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의 내면과 우리가 속한 사회의 구조를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서, 성경이 수천 년 전에 이미 포착해 놓은 인간의 조건을 다시 읽어보려 한다.

어린 잭슨 파이브의 나이트클럽 공연

2. 다섯 살의 무대 — 빼앗긴 유년기

마이클 조셉 잭슨은 1958년 8월 29일,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라는 공업 도시에서 태어났다. 방 두 칸짜리 집에 부모와 아홉 남매가 함께 살았다. 아버지 조 잭슨은 제철소 노동자였고, 동시에 이루지 못한 음악의 꿈을 가슴에 품은 남자였다.

어느 날 조는 아들 티토가 몰래 자신의 기타를 만지다 줄을 끊은 것을 발견했다. 노발대발하는 대신, 그는 아들에게 연주를 해보라고 했다. 눈앞에 펼쳐진 재능에 그는 즉각 결심을 굳혔다.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기로. 이렇게 잭슨 파이브가 탄생했다.

마이클은 다섯 살 때 이 그룹에 합류했다. 그의 재능은 처음부터 독보적이었다. 형들이 연습하는 것을 눈으로 보기만 해도 즉각 따라 했다. 박자감, 음감, 무대 장악력이 또래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조 잭슨은 그 재능에 감탄하는 아버지이기 전에, 철저한 관리자였다. 연습이 틀리면 매가 날아왔다. 음정이 틀리면 벌이 주어졌다.

"나는 나이트클럽에서 자랐다. 일곱 살, 여덟 살에 나이트클럽에 있었다. 스트립 댄서들이 옷을 다 벗는 것을 보았다.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토하는 것을 보았다. 어른들이 짐승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 마이클 잭슨, 2002년 인터뷰

잭슨 파이브는 음반 계약을 위해 뛰는 동안 이른바 '치틀린 서킷(Chitlin' Circuit)', 즉 흑인 클럽과 공연장 순회를 해야 했다. 그 중에는 스트립쇼 공연장도 있었다. 어린 마이클이 공연 전후로 목격한 것들은 어떤 아이도 보아서는 안 될 성인 세계의 민낯이었다. 그에게 성인 무대의 성적 표현이 나중에 자연스러운 무대 언어로 흡수된 것은 이 배경 없이 이해할 수 없다.

Chitlin’ Circuit 이란?
Chitlin’ Circuit은 미국의 인종분리 시대에 흑인 예술가들이 비교적 안전하게 공연할 수 있었던 비공식 공연망을 가리킨다. 193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에 특히 활발했고, 미국 남부·동부·중서부 일대의 극장, 클럽, 교회 행사장, 지역 커뮤니티 무대들이 이 네트워크를 이루었다. 당시 흑인 음악가들은 많은 백인 소유 공연장에 자유롭게 설 수 없었기 때문에, 이 공연망은 생계와 명성을 쌓는 핵심 통로가 되었다.

어머니 캐서린,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

아버지 조 잭슨이 공포의 상징이었다면, 어머니 캐서린은 따뜻함의 원천이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었고, 조용히 안아주었고, 마이클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이라고 부를 만큼 자애로운 존재였다.

캐서린은 독실한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다. 그녀는 아이들을 신앙 안에서 키우려 했다. 잭슨 형제들은 어린 시절 이웃집을 돌며 전도하고, 집회에 참석하며 자랐다. 그러나 비극적인 것은, 캐서린의 신앙이 아이들을 조 잭슨의 폭력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조의 폭력 앞에서 울면서 말리기는 했지만, 멈추지 못했다.

신학적 시각
성경 말씀이 율법주의화될 때의 비극이 여기서 드러난다.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은 남편이 아내와 자녀를 사랑으로 섬기는 맥락(엡 5:25-29) 안에서 의미를 가진다. 그 맥락이 제거되고 복종만 남을 때, 말씀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캐서린의 인내는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운 덕목이었지만, 그 인내가 자녀들의 고통을 지속시키는 구조 속에 놓였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신앙의 열매가 아니었다.

3. 목소리의 비밀 — 사라진 변성기

마이클 잭슨의 목소리는 신기했다. 성인 남성의 몸에서 나오는 높고 맑은 테너 음성. 2016년, 마이클의 주치의였던 콘래드 머리 박사가 회고록에서 충격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조 잭슨이 마이클이 열두 살 무렵, 목소리가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호르몬 억제 주사를 맞혔다는 것이다. 표면적 명목은 여드름 치료였으나, 실제 목적은 미성(美聲)을 유지하는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확인된 사실인가? 전문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회의적이다. 문제의 약물은 당시 임상 시험 단계에 있었고, 2009년 부검 결과 마이클의 후두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잭슨 가의 다른 형제들도 유사하게 높은 음역을 가지고 있어 유전적 특성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이 완전히 무시되지 않는 이유도 있다. 조 잭슨이 아들들을 자신의 사업 도구로 취급했다는 것은 이미 다방면으로 확인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들의 목소리를 상업적 자산으로 보고 보존하려 했다는 것은, 그의 성격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진실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 주장이 터무니없는 맥락은 아니었다.

확인된 사실
마이클의 목소리는 3~4옥타브에 달하는 폭넓은 음역을 가졌다. 프레디 머큐리, 크리스 코넬 등 극소수의 천재적 보컬리스트들만이 구현하는 범주였다. 이것이 약물의 결과인지, 유전적 재능인지, 혹은 혹독한 훈련의 결과인지는 현재까지도 논쟁 중이다.

4. 천재의 탄생 — 위대함의 뿌리

마이클 잭슨의 천재성은 타고났지만, 그것을 폭발시킨 사람들이 있었다.

다이애나 로스 — 첫 번째 스승

모타운의 슈퍼스타 다이애나 로스는 잭슨 파이브를 발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어린 마이클이 캘리포니아로 이주했을 때 한동안 그녀의 집에서 지냈다. 그녀는 단순한 연예계 선배가 아니라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마이클은 그녀의 무대 장악력, 청중과의 교감 방식, 스타로서의 자기 관리를 생생하게 관찰하며 흡수했다.

제임스 브라운 & 재키 윌슨 — 몸의 언어

마이클이 무대 위의 움직임을 처음 배운 것은 제임스 브라운의 공연에서였다. 브라운의 파워풀한 발놀림, 무릎 꿇기, 스핀 기술을 어린 마이클은 눈이 닳도록 관찰했다. 재키 윌슨 역시 열정적인 노래와 춤의 결합을 가르친 선생이었다. 마이클은 이 두 선배에게서 음악이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임을 배웠다.

퀸시 존스 — 천재를 완성한 프로듀서

마이클의 천재성이 세계적 폭발력을 갖게 된 것은 프로듀서 퀸시 존스를 만나면서였다. 두 사람의 만남은 1978년 영화 '위즈' 촬영장에서 이루어졌다. 퀸시는 마이클 안에 있는 것을 보았다. 단순한 팝 가수가 아닌, 장르를 넘나드는 예술가의 가능성을.

퀸시 존스의 프로듀싱 아래 마이클은 1979년 '오프 더 월', 1982년 '스릴러', 1987년 '배드'를 연속으로 발표했다. 스릴러는 현재까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6,6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 앨범은 음악의 지형 자체를 바꿨다.

문워크 — 역사적 순간

재능에 대한 정직한 이해

마이클의 재능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조 잭슨도 음악적 감각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 DNA가 아들들에게 전해졌다.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이 그 재능을 일찍 꽃피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훈련이 폭력적이어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조 잭슨이 조금 더 다른 사람이었다면, 마이클은 같은 재능을 가지고도 훨씬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상처가 그를 위대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재능이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다. 상처는 그 위대함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을 뿐이다. 조 잭슨의 폭력은 마이클의 위대함의 조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냥 폭력이었다.

세계 최고의 탭댄서 프레드 아스테어는 마이클의 공연을 보고 직접 전화해 말했다. "당신은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놀라운 무대를 가졌습니다."

5. 불꽃이 남긴 상처 — 화재와 백반증

1984년 펩시 CF 화재 사건

1984년 1월 27일. 마이클은 펩시 CF를 촬영하고 있었다. 로스앤젤레스의 샤인 오디토리엄, 수천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앞에서였다. 그는 계단을 내려오며 노래했다. 그 순간 양쪽에서 점화된 불꽃 장치가 오작동했다. 마그네슘 섬광탄이 너무 가까이서 폭발하며 그의 두피에 불이 붙었다. 카메라는 그 순간을 담았다. 스태프들이 뛰어와 불을 껐을 때, 그의 두피는 이미 2~3도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 상처는 평생 지속되었다. 두피 재건 수술만 수차례. 수술마다 통증이 따라왔고, 의사들은 진통제를 처방했다. 그 진통제가 이후 수십 년간의 마약성 진통제 의존의 시작이 되었다. 결국 2009년 그를 죽음으로 이끈 프로포폴 의존의 출발점도 이 화재였다.

더 중요한 것은 화재와 백반증의 연결이다. 마이클의 피부과 의사 아놀드 클라인 박사는 1983년에 이미 루푸스를 발견했고, 1986년에 백반증을 진단했다. 의학적으로 백반증과 루푸스는 심각한 신체적 트라우마나 극심한 스트레스에 의해 촉발되거나 악화될 수 있다. 두피 화상이 이미 취약했던 면역 체계에 결정적 충격을 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백반증은 피부의 색소 세포가 파괴되면서 불규칙한 흰 반점이 생기는 자가면역 질환이다. 치료법은 없다. 마이클의 피부는 1980년대 중반부터 점점 하얗게 변해갔다. 세상은 그것을 보며 "흑인이 백인이 되고 싶어 한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병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솔직해질 수 없었던 이유 — 공개의 딜레마

혼자 남겨진 인간 — 백반증과 고독

마이클은 1980년대 내내 자신의 피부 변화에 대해 침묵했다. 백반증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권장되는 치료법 중 하나가 '색소 탈색', 즉 남아있는 정상 피부 색소를 제거해 전체 피부톤을 균일하게 맞추는 것인데, 마이클은 바로 이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피부 미백'으로 읽었다.

마이클 자신은 공개를 원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그의 매니지먼트 팀은 이미 여러 성형 의혹으로 이미지가 손상된 상황에서 자가면역 질환 사실이 추가될 경우 더 큰 논란이 생긴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결국 마이클은 1993년, 오프라 윈프리와의 역사적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백반증을 공개 시인했다. 당시 전 세계 9,000만 명이 그 인터뷰를 시청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10년 가까이 쌓인 오해의 퇴적물은 하나의 인터뷰로 걷어낼 수 없었다. 2009년 그의 사후 부검에서 백반증 진단이 의학적으로 완전히 확인되었다.

비극의 구조
세상이 그를 조롱하는 동안, 그는 자신이 어쩔 수 없는 병과 싸우고 있었다. 그 진실이 죽고 나서야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두 번째 비극이다.

6. 먼저 확인해야 할 사실 — 아동 성추행 의혹의 실체

마이클 잭슨 이야기에서 아동 성추행 의혹은 피할 수 없는 주제다. 그러나 이 의혹을 다루기 전에, 먼저 법적·사실적으로 확인된 것들을 정직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1993년 사건 — 금전적 동기가 있었다

1993년, 조던 챈들러라는 소년의 아버지 에반 챈들러가 마이클을 고소했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처음부터 석연치 않은 요소들이 있었다. 에반 챈들러는 고소 이전에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 녹취되었다. "나는 마이클을 파괴할 것이다. 이것은 일방적인 전쟁이 될 것이다." 그는 고소하기 전에 마이클 측에 2,000만 달러를 요구했고, 거절당하자 법적 절차로 나아갔다.

이 사건은 형사 재판 없이 민사 합의로 마무리되었다. 합의금이 지급되었다는 사실이 유죄의 증거처럼 소비되었지만, 형사 기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5년 재판 — 14개 혐의 전부 무죄

2003년 마틴 바시어의 다큐멘터리 방영 이후 두 번째 의혹이 제기되었고, 2005년 정식 형사 재판이 열렸다. 캘리포니아주 검사는 14개의 혐의를 제기했다. 5개월간의 재판이 진행되었고, 검사 측 핵심 증인들의 진술이 법정에서 일관성을 잃었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소년의 어머니는 이전에도 다른 유명인을 상대로 허위 고소를 한 전력이 있었다.

확인된 사실
배심원단은 심의 끝에 14개 혐의 전부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만장일치였다. 이후 배심원들이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명확했다. "증거가 없었다. 검사 측 증인들의 신뢰성이 무너졌다." 마이클 잭슨은 법원에서 아동 성추행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없다.

7. 경계를 건드린 자 — '경계'란 무엇인가

마이클 잭슨의 퍼포먼스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본능적인 불편함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도덕적 판단이 아니었다. 더 깊은 층위에서 오는 반응이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경계(boundary)'라는 개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경계'란 무엇인가 — 기본 개념

'경계'는 말 그대로 어떤 것과 다른 것 사이의 선이다. 내 것과 네 것의 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선. 아이가 있는 공간과 어른만의 공간 사이의 선. 이 경계들은 사회가 안전하게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눈에 보이지 않는 약속들이다.

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이 갑자기 속옷을 꺼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면 학생들은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그 선생님이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 행위가 '공적 공간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경계를 침범했기 때문이다. 이 경계를 우리는 학습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훨씬 깊은 층위에서 반응한다.

뇌과학이 설명하는 것 — 신경학적 반응

인간의 뇌는 맥락(context)에 극도로 민감하다. 같은 자극이라도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처리된다. 의사가 진료실에서 환자의 몸을 살피는 것은 아무런 불편함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낯선 사람이 버스에서 같은 행동을 한다면 즉각 위협 반응이 일어난다.

이것은 학습된 반응이 아니다. 신경학적 반응이다. 뇌의 편도체는 맥락이 일치하지 않는 자극이 들어올 때 즉각 경보를 울린다. 공적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성적 자극이 주어질 때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함은 바로 이 경보 신호다. 마이클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뇌가 그렇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성심리학이 설명하는 것 — 왜 하필 그 부위인가

성심리학자 레온 카스(Leon Kass)는 흥미로운 관찰을 제시한다. 인간의 신체 중 성기는 유일하게 혼자서는 그 의미가 완성되지 않는 부위라는 것이다. 눈은 혼자서도 볼 수 있다. 손은 혼자서도 만질 수 있다. 그러나 성기는 본질적으로 '타자'를 향해 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전제로 한다.

바로 이 때문에, 그 부위의 공개적 과시는 관계 없는 타인에게 가장 강렬한 침입감을 준다. 관계의 맥락 없이 성적 신호를 공개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상대방의 심리적 공간을 허락 없이 침범하는 것이다.

사람이란 이런 존재다 — 가장 단순한 설명

그러나 더 단순하게 말하면 이것으로 충분하다. 사람은 자신이 불편하게 여기는 것을 보면 그것을 싫어한다. 마이클은 많은 사람들이 각자 불편하게 여기는 것들을 한 몸에 담고 있었다. 그래서 각자의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종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 싫은 사람은 마이클의 피부 변화를 보며 싫어했다. 젠더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 싫은 사람은 마이클의 중성적 외모와 퍼포먼스를 보며 싫어했다. 성적 표현이 공적 공간에 노출되는 것이 싫은 사람은 마이클의 무대 동작을 보며 싫어했다. 이것은 심리학 용어로 포장할 필요 없이, 그냥 인간의 본성이다.

그럼에도 그를 옹호해야 할 부분

그러나 공정하게 보려면 이것도 말해야 한다. 마이클의 성적 퍼포먼스는 진공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일곱 살부터 성인 클럽에서 스트립쇼를 보며 공연했다. 제임스 브라운, 엘비스 프레슬리, 프린스 모두 시대마다 "선을 넘었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예술적 혁신가로 재평가받았다. 마이클 역시 그 계보 위에 있었다.

다만 한 가지는 인정해야 한다. 마이클은 자신의 퍼포먼스에 대해 대중을 충분히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예술이다.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배운 무대 언어다." 그런 설명이 부족했다. 오해를 사전에 방어할 언어가 없었다.

창세기 3장이 말하는 것 — 가장 깊은 층위

이 모든 설명을 넘어, 성경은 이 문제의 가장 깊은 뿌리를 이미 포착하고 있다. 창세기 2장 25절,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이것이 타락 이전의 상태다. 벗음과 수치심이 공존하지 않았다. 왜? 관계에 완전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 7절에서 선악과를 먹은 후 그들이 가린 것은 몸 전체가 아니었다. 히브리어 원문의 '하고로트(חֲגֹרֹת)', 즉 허리를 두르는 것이었다. 얼굴도, 손도 아니었다. 성기 부위, 즉 가장 상대방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기 위한 곳, 신비로운 유대감과 친밀하고 은밀한 사랑의 언어가 새겨진 부위를 먼저 가렸다.

수치심의 출현은 단순히 몸이 부끄러워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계의 신뢰가 깨진 것의 증상이었다. 하나님과의 신뢰가 깨졌고, 두 사람 사이의 신뢰가 흔들렸다. 그 신뢰 붕괴가 가장 먼저 드러난 곳이 바로 관계 지향적인 부위였다.

핵심 통찰
사람들이 공적 공간에서의 성적 노출에 본능적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창세기 3장 이후 인류가 공유하게 된 관계 신뢰 붕괴의 흔적이다. 관계 없는 타인에게 가장 취약한 부위가 노출될 때, 우리 안 깊은 곳에서 뭔가가 반응한다. 신경과학은 그 반응의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성심리학은 그 구조를 분석하며, 창세기는 그 기원을 밝힌다.

8. 미디어라는 괴물 — 서사가 진실을 삼킨다

마이클에게는 내면의 취약함이 있었다. 그것을 미디어가 발견했다. 그리고 상품으로 만들었다. 1993년 의혹이 터지자 미디어는 즉각 프레임을 설정했다. '왜코 재코(Wacko Jacko)', 이상한 잭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마이클은 이 이름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러나 한번 붙은 별명은 걷어내기 어려웠다.

미디어가 이렇게 집요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돈이었다. 마이클 잭슨을 열광하는 그룹과 그를 의심하는 그룹이 첨예하게 나뉠수록, 그 갈등을 판매하는 시장은 커졌다. 갈등은 시청률이 되고, 시청률은 광고 수익이 되었다.

2005년 재판에서 마이클은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언론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유죄 의혹을 보도할 때만큼의 열정으로 무죄 판결을 보도한 매체는 없었다. 진실보다 서사가 더 강할 때, 개인은 서사 안에 갇혀 죽는다. 마이클은 법정에서는 무죄였으나 대중의 법정에서는 끝까지 유죄로 남았다.

9. 네버랜드 — 동화는 동화로 남겨야 한다

네버랜드 — 동화와 현실의 경계

캘리포니아의 2,700에이커 부지에 마이클은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했다. 놀이기구, 동물원, 영화관, 사탕 가게, 기차역. 피터팬의 섬, 네버랜드였다. 건설 비용만 수천만 달러였다.

왜 그는 이것을 만들었는가. 다섯 살부터 무대에 올려진 소년은 흙장난 한 번, 친구와의 자전거 경주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성인이 된 그의 몸 안에 그 소년이 여전히 살고 있었다. 네버랜드는 그 소년을 위해 만든 세계였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있다. 동화 속의 이상향을 현실에서 구현하려는 시도는 왜 언제나 실패하는가? 이상향(utopia)은 '어디에도 없는 곳(ou-topos)'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왔다. 그것은 의미상 존재할 수 없는 곳이다. 동화가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현실에 없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움을 현실에 구현하려는 순간, 동화는 현실의 중력을 받아 무너진다.

마이클의 네버랜드는 정확히 이 비극을 실연했다. 그는 그 공간에 아이들을 초대했다. 그의 동기는 아마 순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성인 남성이 어린 아이들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구조는, 그 동기가 아무리 순수해도 위험하다. 그것은 동화의 규칙이 아니라 현실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돈이 많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환상인지를 네버랜드는 보여준다. 돈은 현실의 법칙을 바꾸지 못한다. 그것은 현실의 문제를 더 화려하게 포장할 뿐이다. 마이클은 무한한 富로 유년기를 되찾으려 했지만, 되찾지 못했다.

결론
동화 속의 이야기는 동화로 남겨야 한다. 그것을 현실에서 구현하려 할 때, 그것은 동화가 아니라 위험이 된다. 네버랜드는 마이클의 상처가 만들어낸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비극적인 실수였다.

10. 집단의 심리 — 우리는 왜 그를 그렇게 대했는가

마이클을 향한 대중의 반응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보편적인 패턴이 보인다. 이것은 마이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류가 반복하는 패턴이다.

첫 번째 — 인지 부조화와 그 해소

사람은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정보를 동시에 갖고 있을 때 심리적 불편함을 느낀다. "나는 담배가 해롭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나는 담배를 피운다." 이 불편함을 해소하려 한다.

마이클을 바라보는 대중도 같은 상황에 처했다. "내가 사랑하는 음악을 만든 사람이 — 아이들을 해쳤을지도 모른다." 이 두 정보가 충돌했다. 해소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의혹을 전면 부정하거나, 음악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거나. 대중은 두 진영으로 나뉘어 각자의 방식으로 불편함을 해소했다. 그리고 바로 이 분열이 미디어에게는 거대한 상업적 기회가 되었다.

두 번째 — 비례를 잃은 집단적 처벌

집단은 내부의 불안과 긴장을 특정 개인에게 쏟아내는 경향이 있다. 이때 그 개인이 받는 처벌의 강도는 그의 실제 잘못의 크기와 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마이클의 경우가 그랬다.

그에게 실제로 문제적인 요소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가 받은 공격의 강도와 지속성은 그 문제의 실제 크기에 비해 압도적으로 과잉이었다. 세상에는 그보다 훨씬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마이클처럼 집요하게 추적당하지 않았다. 그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불안이 향하는 방향이 되었다.

세 번째 — 사람은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보면 싫어한다

이것이 가장 단순하고 가장 정직한 설명이다. 마이클은 많은 사람들이 각자 불편하게 여기는 것들을 한 몸에 담고 있었다. 인종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 싫은 사람은 그의 피부 변화를 보며 싫어했다. 젠더 경계가 무너지는 것이 싫은 사람은 그의 중성적 퍼포먼스를 보며 싫어했다. 성인과 아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 싫은 사람은 그의 네버랜드를 보며 싫어했다. 각자의 이유가 달랐다. 그래서 집단적 공격이 그토록 다층적이고 그토록 지속적이었다.

대중 반응의 구조 압도적 재능과 성공
인종·젠더·도덕의 경계를 동시에 건드림
각자가 싫어하는 것을 마이클에게서 발견함
인지 부조화 → 두 진영으로 분열
미디어의 상업적 착취 → 갈등 증폭
인물 자체보다 서사가 자율적으로 작동함

11. 신학적 결론 — 창세기 3장의 구조로 읽는 인간의 조건

군중 속의 한 사람 — 빛과 어둠의 대비

이제 모든 이야기가 수렴하는 가장 깊은 층위로 내려간다.

첫째 — 인간은 자신이 태어난 맥락을 선택할 수 없다

마이클은 조 잭슨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다섯 살에 무대에 오르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성인 클럽에서 스트립쇼를 보며 공연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백반증을 선택하지 않았다. 우리 중 누구도 자신의 출발점을 선택하지 않는다.

둘째 — 재능은 아버지에게서 왔고, 폭력은 필요하지 않았다

마이클의 재능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조 잭슨도 음악적 감각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 DNA가 아들들에게 전해졌다.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이 그 재능을 일찍 꽃피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훈련이 폭력적이어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조 잭슨이 조금 더 다른 사람이었다면, 마이클은 같은 재능을 가지고도 훨씬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인내했으며, 결국 그의 재능이 그를 독특하게 만들었다. 상처가 그 재능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조 잭슨의 비열함이 마이클의 재능을 꽃피우게 하는 조건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냥 폭력이었다.

셋째 — 창세기 3장의 구조가 모든 것을 관통한다

선악과를 먹기 전, 아담과 하와는 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았다(창 2:25). 관계의 신뢰가 완전했기 때문에 취약성이 위협이 되지 않았다. 선악과를 먹은 후, 그들이 가린 것은 허리였다. 가장 상대방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기 위한 곳, 신비로운 유대감과 친밀하고 은밀한 사랑의 언어가 새겨진 부위였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공적 공간에서 성적 노출에 본능적 거부감을 느끼는 가장 깊은 이유다. 그것은 단순한 보수성이나 종교적 규범이 아니다. 창세기 3장과 무관하게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사적인 영역의 공개적 노출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한 것이다.

넷째 — 하나님의 응답은 덮어주심이었다

창세기 3장의 마지막에 주목할 장면이 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창 3:21). 사람들이 만든 무화과 잎과는 달랐다. 더 견고하고, 더 완전하게 덮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 동물이 죽어야 했다. 최초의 죽음. 최초의 희생. 훗날 십자가에서 완성될 구속의 원형이었다.

하나님은 수치를 없애지 않으셨다. 타락한 세계에서 수치심은 어쩌면 인간 존엄의 마지막 보루일지 모른다. 하나님은 그 수치를 덮으셨다. 은혜로, 희생으로.

마지막 질문

마이클 잭슨은 2009년 6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 이후 세상은 비로소 그를 그리워했다. 살아있는 동안 그토록 집요하게 공격했던 세상이, 죽고 나서야 그를 애도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 앞에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 돌을 들어 올리기 전에 먼저 자신의 손을 보라. 그 손이 얼마나 깨끗한가.

마이클 잭슨도 역시 실수와 결함을 가진 인간이었다. 법적으로 무죄가 확정된 부분도 있고, 도덕적으로 지혜롭지 못했던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가 받은 상처는 그 실수들의 크기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돌을 던지고, 죽은 사람에게 꽃을 바치는 사람인가. 아니면 살아있는 사람에게 먼저 가죽옷을 건네는 사람인가. 그리고 나 자신의 불편함을 누군가에게 쏟아내며 그것을 정의라고 부르고 있지는 않은가.

성경이 창세기 3장에서 포착한 가장 깊은 진실은 이것이다. 모든 인간적 왜곡의 뿌리는 관계의 신뢰 붕괴에 있다. 하나님과의 신뢰가 깨질 때,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도 흔들린다. 그 흔들림이 수치심을 만들고, 수치심이 숨음을 만들고, 숨음이 서사를 만들고, 서사가 사람을 가두기도 한다.

그 서사의 커튼 뒤에서 나오는 길은 하나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처럼, 희생을 통해 약함을 덮어주는 은혜의 관계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이클 잭슨은 그 은혜를 충분히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삶은 비극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이야기에서 그 은혜의 필요성을 발견한다면, 그의 삶은 헛되지 않은 증언이 된다.

이 글은 마이클 잭슨의 무죄 또는 유죄를 확정하는 글이 아닙니다. 한 인간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의 내면과 우리가 속한 사회의 구조를 들여다보려는 신학적·문화적 성찰입니다.

선린교회 | sunl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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