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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기후 담론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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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9-0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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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에 실은 글

2026년 9월, 히말라야에서 발생한 대규모 빙하·암반 붕괴는 1,000명이 넘는 생명을 앗아갔다. 이 참사가 보도된 직후, 하나의 서사가 빠르게 퍼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2025년 1월 재해 조기경보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는 보도다. 그러나 어떤 매체는 네팔 정부와 중국이 맺은 일대일로 정책으로 히말라야 산맥에 대규모 도로 건설을 위한 땅 파해치기 공사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네팔은 매년 평균 150명이 홍수·산사태로 목숨을 잃는다. 2024년 대홍수 당시에도 기상청이 닷새 전 경보를 발령했지만 실질적 대비는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수년간 재난 대비 개선을 권고했지만 대부분 이행되지 않았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즉, 네팔의 재난 대응 실패는 특정 외국 원조 프로그램의 존폐와 무관하게 이미 만성화된 구조적 문제였다.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할 일차적 의무를 지닌 주체는 그 나라의 정부이지 타국의 자선이 아니다. 트럼프의 결정이 최선이었다고 옹호할 수는 없어도, 그 결정을 이번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악의적인 비난에 지나지 않다.
이 논쟁은 자연스럽게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 애초에 기후변화라는 전제 자체가 신뢰할 만한가. 설령 그렇다 쳐도 문제는 여전히 다른 곳에 있다. 미국은 역사적 누적 배출량 1위, 중국은 현재 연간 배출량 1위다. 그러나 세계 최대 현재 배출국인 중국은 UN 기후 체제 안에서 여전히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어 손실과 피해 기금 등에 대한 재정 분담 의무 자체를 지지 않는다. 기후과학 전체를 조작된 카르텔로 치부하지 않더라도, 문제는 그토록 오랜 세월 기후 문제로 시끄러웠지만, 정작 아무런 현실적 대응이 없었다는 점이다.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규제만 있을 뿐 과학적, 현실적 대안에는 눈에 띄는 열정이 소소하다. 이번 사태로 세계는 더 이상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덤벼들면서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되었다. 인류는 큰 사태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지혜를 모색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는 것은 온 인류의 사명이며, 마땅한 의무이다. 자연은 하나님의 최고의 보물이자, 동시에 최고의 심판이기도 하다. 인류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늘 적극적 주인의식으로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려왔다. 그러나 사람들의 비아냥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최종 정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Claude 를 통해서 작성한 글

자연재해인가, 만들어진 재난인가

— 하나의 재난, 세 개의 책임

2026년 8월 26일, 네팔 랑탕 국립공원 인근에서 발생한 빙하·암반 붕괴는 트리술리강과 보테코시강을 따라 약 100km를 휩쓸었다. 8월 31일 기준 네팔 재난위험경감관리청 집계로 903명이 사망하고 4,247명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수색이 계속되면서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지고 있다.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원인을 찾는다. 이번에도 곧바로 두 개의 이야기가 등장했다.

하나는 "트럼프 행정부가 2025년 1월 재난 조기경보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끊었기 때문에 피해가 커졌다"는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중국 측의 대규모 산악 개발과 건설공사가 산을 훼손하고 하천을 변화시켜 이번 재난을 촉발했다"는 주장이다.

흥미로운 것은 두 이야기가 서로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지만, 사실 같은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자연재해의 위험을 인간이 얼마나 키웠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재난의 원인'을 하나의 층위로 묶어서는 안 된다.

빙하와 암반이 무너지는 자연적 촉발 요인이 있고, 그 자연적 위험을 증폭시키는 개발행위가 있으며, 실제 피해를 키우거나 줄이는 국가의 재난관리 능력이 있다. 이 세 가지를 구분하지 않으면 자연재해를 정치적 구호로 바꾸거나, 반대로 인간의 책임을 자연현상 뒤에 숨기게 된다.


자연이 방아쇠를 당겼다고 해서 인간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에 따르면 이번 참사의 직접적인 촉발 요인은 랑탕 지역에서 발생한 빙하와 암반의 대규모 붕괴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논쟁이 끝나는가?

그렇지 않다.

자연현상이 재난의 '방아쇠'였다는 것과 인간의 행위가 그 재난의 규모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산사태와 빙하 붕괴가 원래부터 존재하는 지역이라면 인간은 오히려 더욱 조심해야 한다. 산을 깎고 도로를 내고 터널을 뚫고 하천을 변경하며 대규모 시설을 건설한다면, 자연이 가진 위험에 인간의 위험을 추가하는 셈이다.

특히 히말라야와 같은 고산지역은 지질학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다. 이런 곳에서 개발은 단순한 경제활동이 아니다. 산의 경사와 배수, 지하수의 흐름, 하천의 침식, 사면의 안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다.

따라서 물어야 할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중국의 공사가 빙하를 무너뜨렸는가?"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다음 질문을 던지는 것 역시 피해서는 안 된다.

"중국을 비롯한 주변 지역의 개발행위가 이미 불안정한 산악환경의 위험을 증가시켰는가?"

그리고

"그 개발행위가 이번 재난의 피해 규모를 키웠는가?"

이것은 반드시 조사해야 할 문제다.


미국의 지원 중단은 '원인'이 아니라 '대응 능력'의 문제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2025년 1월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원조 전면 재검토 과정에서 NASA와 USAID 등이 참여했던 SERVIR-HKH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이 프로그램은 히말라야 지역의 홍수·산사태 감시와 조기경보 역량을 지원해 왔다.

따라서 지원 중단이 네팔의 재난 감시 능력에 일정한 공백을 만들었을 가능성은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인과관계의 선을 정확하게 그어야 한다.

미국의 지원 중단이 빙하와 암반을 무너뜨린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미국이 지원을 끊었기 때문에 이번 재난이 발생했다."

라고 말하는 것은 과도하다.

보다 정확한 표현은 이것이다.

미국의 지원 중단은 재난을 발생시킨 원인이 아니라, 발생한 재난에 대한 감시와 대응 능력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는 요인이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일반적인 강우성 홍수와는 성격이 다르다. 빙하와 암반이 갑작스럽게 붕괴하면서 엄청난 양의 얼음과 암석, 토사가 계곡으로 쏟아지는 초단기 재난이라면 기존의 조기경보 시스템이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대규모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따라서 미국의 지원 중단을 이번 참사의 핵심 원인으로 규정하는 것 역시 과학적 증거보다 정치적 해석에 가까워질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네팔 정부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여기에서 가장 불편한 질문 하나를 피해서는 안 된다.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할 주체는 누구인가?

외국의 원조기관이 아니다.

미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다.

네팔 정부다.

외국의 지원은 국가의 재난관리 역량을 보완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의 기본적인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네팔은 홍수와 산사태가 반복되는 나라다. 이미 수년 동안 재난 대비와 대응체계의 취약성이 지적되어 왔다. 여러 기관에 재난관리 업무가 분산되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2024년 대홍수 당시에도 기상당국의 사전 경보가 있었음에도 충분한 대비와 대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렇다면 이번 참사에서도 물어야 한다.

경보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가?

위험지역에 대한 대피계획은 있었는가?

수력발전소와 도로, 교량 등 주요 시설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설계되었는가?

산악지역의 개발허가는 지질학적 위험성을 충분히 평가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위험을 알고도 사람이 위험지역에 머물도록 방치한 것은 아닌가?

이 질문들이 빠진 채 미국이나 중국 가운데 한쪽만을 '원인 제공자'로 지목한다면, 정작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임은 사라져 버린다.


산을 깎은 사람과 경보를 끊은 사람, 그리고 위험을 관리해야 할 사람

이번 재난을 바라보는 가장 정직한 시각은 한 사람의 범인을 찾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 가지 책임을 구분해야 한다.

첫째, 자연의 책임이 있다.

빙하와 암반의 붕괴라는 거대한 자연적 힘이 재난의 직접적인 방아쇠가 되었다.

둘째, 인간의 개발에 대한 책임이 있다.

누군가는 산을 깎고 도로와 터널을 만들며 하천과 계곡에 대규모 시설을 건설했다. 그것이 이번 붕괴를 직접 일으켰다는 증거가 아직 없다 하더라도, 개발이 산악지역의 위험도를 얼마나 증가시켰는지는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셋째, 국가의 관리 책임이 있다.

누군가는 위험을 감시하고, 경보하고, 대피시키고, 위험지역의 개발을 통제해야 했다. 외국의 지원이 있든 없든 그 최종 책임은 네팔 정부에 있다.

이 세 가지를 구별해야만 비로소 재난의 실체가 보인다.


재난은 자연이 만들지만, 대형 참사는 인간이 키울 수 있다

어쩌면 이번 참사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누가 산사태를 일으켰는가?"

가 아닐지도 모른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왜 자연의 위험이 이렇게 거대한 인명재난으로 변했는가?"

산사태가 빈번한 지역이었다면 위험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감시체계가 약화되었다면 위험은 더 커졌을 것이다.

산을 깎고 도로와 터널을 만들며 개발을 확대했다면 자연환경의 위험은 또 다른 차원에서 커졌을 수 있다.

그리고 위험지역에 사람과 산업시설이 집중되어 있었다면 자연재해가 곧 대형 인명재난으로 바뀔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따라서 이번 참사를 단순히 '자연재해'라고 부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자연은 위험을 제공한다.

그러나 위험을 어디까지 키울 것인지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하나의 재난, 여러 개의 책임

이번 참사를 미국의 원조 중단 하나로 설명하는 것도 틀렸고, 중국의 개발공사 하나로 설명하는 것도 아직은 성급하다.

그러나 두 가지를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

미국의 지원 중단이 재난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하려면 증거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개발공사가 재난을 촉발했다고 주장하는 데에도 증거가 필요하다.

인과관계의 잣대는 누구에게나 동일해야 한다.

동시에 개발이 위험을 증가시켰을 가능성과 국가의 대응 실패 가능성을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처음부터 배제해서도 안 된다.

이번 참사는 아마도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빙하와 암반이라는 자연의 힘, 기후와 지질환경이라는 배경, 인간의 개발행위, 위험지역에 대한 시설 집중, 취약한 조기경보체계, 그리고 국가의 재난관리 능력.

이 모든 요소가 어떻게 서로 겹쳤는지를 밝혀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가 있다.

자연재해는 인간이 막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연재해가 대형 참사가 되는 과정에는 인간의 선택이 개입되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 네팔의 비극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길 정치적 서사보다 더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산이 무너진 것은 자연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산 앞에 누가 사람을 세웠고, 누가 위험을 키웠으며, 누가 그 위험을 관리하지 못했는가?

바로 그 질문에서 진짜 책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과학적 합의와 음모론적 회의 사이

이 논쟁은 자연스럽게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 애초에 기후변화라는 전제 자체가 신뢰할 만한가. 이 지점에서는 분명한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인위적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의 지배적 원인이라는 명제는 IPCC의 여러 차례 평가보고서, 수만 편의 동료심사 논문 분석, 그리고 서로 다른 나라·기관이 독립적으로 산출한 온도·해양·빙하 데이터가 수렴하는 결과다. 2009년 '기후게이트' 사건처럼 조직적 조작 의혹이 가장 구체적으로 제기됐던 사례조차, 영국과 미국의 최소 6개 이상의 독립 조사기관에서 조작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 이 정도로 다층적이고 국제적으로 재현된 결론을 "카르텔의 조작"으로 설명하려면, 그 카르텔이 통제해야 할 데이터와 기관의 규모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방대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런 규모의 조작을 뒷받침하는 물증은 나온 적이 없다.

동시에, 회의론이 완전히 근거 없는 것도 아니다. 연구비 지원 구조가 특정 키워드 삽입을 유도하는 '제도적 왜곡'은 학계 스스로 인정하는 문제이고, 실제로 정반대 방향(정부가 "기후변화"라는 표현 삭제를 요구한 사례)도 존재했다. 이는 기후과학의 핵심 결론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연구비 행정 시스템의 정치적 오염 가능성에 대한 정당한 우려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타당한 절차적 비판이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오인되거나, 반대로 근거 없는 음모론이 절차적 비판의 정당성에 편승하게 된다.

책임 배분이라는 진짜 논쟁

마지막으로 남는 질문은 책임의 몫이다. 미국은 역사적 누적 배출량 1위, 중국은 현재 연간 배출량 1위다. 이 중 어느 지표를 '도덕적 책임의 기준'으로 삼을지는 과학이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정치철학적 선택이다. 그리고 이 선택은 종종 각 진영의 이해관계에 따라 편의적으로 동원된다. 여기서 특히 짚어야 할 사실은, 세계 최대 현재 배출국인 중국이 UN기후체제 안에서 여전히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어 손실과 피해 기금 등에 대한 재정 분담 의무 자체를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돈을 내고 배출을 눈감아 받는다"는 구도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최대 배출국이 재정적 책임에서 제도적으로 면제되어 있다는 뜻이다. 또한 파리협정 체제는 각국의 자발적 감축목표에 기반할 뿐 이를 어겨도 제재할 법적 장치가 없다는 점에서, "발표한다고 배출이 줄어드는 시스템은 아니다"라는 지적은 타당한 구조적 비판이다.

결론

이 모든 논의를 관통하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 다른 층위의 주장을 뒤섞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난의 직접 원인(자연 현상)과 피해 확대 요인(대응 역량 공백)은 다르다. 외국 원조의 유무와 자국 정부의 통치 책임은 다르다. 기후변화의 과학적 실재성과 기후 담론을 둘러싼 정치·재정 구조의 공정성은 다르다. 그리고 책임의 역사적 근원과 오늘의 실천적 우선순위 역시 다른 질문이다. 트럼프의 원조 중단을 이번 참사의 원흉으로 지목하는 것도, 기후과학 전체를 조작된 카르텔로 치부하는 것도 모두 이 층위들을 섞어버린 결과다. 정직한 결론은 더 밋밋하지만 더 견고하다 — 네팔의 비극은 기후변화라는 거시적 압력과, 만성적인 자국 통치 실패와, 우연히 겹친 외국 원조 중단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이며, 그중 가장 직접적이고 통제 가능했던 변수는 다른 무엇보다 네팔 자신의 재난 대응 체계였다는 것이다. 비난의 화살을 어디로 돌리느냐보다, 다음 재난이 오기 전에 무엇을 실제로 고칠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이 더 생산적인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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