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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힘겨운 삶과 즐거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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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11-2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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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정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한 삶은 힘겨운 삶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초연한 상태가 되면 훨씬 수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어떤 삶이 좋을까? 어떤 삶이 보람되거나, 행복하거나, 흥미진진할까. 어떠한 삶이든 나름대로 소중하고, 그 속에는 보잘것없는 만족이나마 있게 마련이다. 짧은 삶이든, 긴 삶이든, 영원한 삶이든 모든 삶은 소중하고 의미가 있고, 연민이 있게 마련이다. 왜 우리가 분노하는가? 누군가의 삶이 유린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차지하려고 하는가? 자기 삶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너의 삶 보다, 나의 삶이 더 우선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기본적으로 이기적 존재이다. 왜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가? 되갚아 주어야 마땅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두 배 이상 응징해도 부족하다. 아예 이 세상에서 흔적을 지워버려야 속이 시원하다. 이런 좌충우돌, 돌발 정의감, 뻔한 결말, 처절한 후회, 지워지지 않는 피해의식, 수천 년 반복되는 복수... 이것이 과연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도 되는 것이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를 부르시는 예수님.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마음으로 누리는 쉼, 진심으로 체험하는 온유함과 겸손함을 주리라. 내가 너희에게 멍에를 줄 터인데 오히려 그것이 너희를 즐겁게 하리라... 이게 무슨 말일까?

예수님은 누군가를 사랑해 보면 체험하게 되는 삶을 설명하셨다. 사랑해라. 그 어떤 행복이나 만족이나 즐거움보다 더한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이해할 필요도 없다. 설명할 필요도 없다. 따질 필요도 없다. 차지할 필요도 없으며, 되갚아 줄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더 주게 되고, 아파도 참게 되고, 깊이 이해하게 되고, 따뜻하게 감싸주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변명은 구차한 쓰레기에 불과하고, 공평을 따지는 것은 시간 낭비. 사랑하기 때문에 힘겹다면 오히려 고마운 일이다. 너를 위한 수고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이것이 하나님이 주고 싶어 하시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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