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인생은 500년을 훌쩍 넘어 천년 정도는 살아야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한 오백 년’만큼이라도 살았으면 좋으련만 하는 민요도 있지만, 우리 인생은 백 년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백 년도 허송하는 세월이 얼마나 많은가? 아기구나 싶으면 어느새 초동이요, 눈 깜짝할 새 중고생이고, 너무 오래 기다렸다 싶은 청춘은 후다닥 지나 입시니, 취업이니, 군 복무니, 청춘사업이니 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지난다. 겨우 결혼에 성공하고 나면 가정 돌보랴 자식 돌보랴, 짝 지워 출가시킬 때까지 정신없이 계주하다 보면 여기저기 고장 난 오장육부를 발견하게 된다.
이만하기도 다행이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온갖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아 모든 인생이 천차만별이다. 아쉬운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못다 한 것은 하늘의 별과 같고, 착각한 것, 틀어진 것을 따져보겠다 치면 모든 밤을 새워도 풀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인생이라면 너무 아쉽지 않은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인생이 들짐승도 아니고, 세상의 부속품도 아닐진대 이름만 덩그러니 남겨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려나.
그래서 그런가. 대부분의 인생은 백 년도 채 되지 못하는 삶을 온 정성을 다해 살아간다. 물론 ‘캐 세라, 세라’ 인생도 있지만. 우리는 왜 어쩌면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가?
그것은 해가 있으면 달이 있듯이, 인생에는 영생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따져봐도, 심지어 진화 이론으로 따져보더라도 인생이 이처럼 어처구니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 놀라운 첨단 진화를 이루었는데도 결국 이런 꼴이라니 우습지 않는가? 진화론으론 인생이 설명되지 않는다. 여전히 거짓 정보가 쌓이고 또 쌓여가는 세상이지만, 인생만큼은 속은 채로 마감 지을 수 없지 않은가? 인생을 따져보면 영생이 보이지 않는가? 그 답이 영생밖에 없지 않은가? 환생은 재탕 인생이니 정답일 수 없고, 영벌이 마땅해 보이긴 하나 지나치게 비극이니 결국에는 구원밖에 답이 없다. 오직 구원이 인생을 충분하게 한다. 구원은 아무리 억울한 인생이라도 충분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