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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누군가 쏘아 올린 이상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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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회
  • 25-12-1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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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나라는 현재 ‘환단고기’라는 책이 갖는 영웅서사가 필요할 정도로 위기에 직면해 있는가? 11세기 십자군 전쟁 시기, 유대인들은 강제 개종의 위기에 직면하면서 ‘야살의 책’을 유행시켰다. 거기에는 아브라함, 모세 등에 관한 화려한 영웅서사가 담겨 있었다. 이 책은 박해와 강제 개종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유대적 정체성을 지탱하는 ‘심리적 보루’ 역할을 했다. 이는 몽골의 침략에서 위기감을 느낀 ‘일연’이 민족적 정체성을 하나로 묶어내기 위해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역사를 집대성하여 ‘삼국유사’를 집필했던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나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기치를 내세워 아시아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려 19세기경에 지어진 위서 ‘고사기고전’을 이용했다. 우리나라도 근대화 물결 속에서 민족적 자존감이 필요할 때 일본의 사례와 같은 맥락으로 ‘환단고기’라는 위서를 만들었고, 이를 운동권에서 민족정기를 내세우며 1970~80년대에 활용했다.

이제 누군가 다시금 이 책을 들먹이며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있지 않은가? 미국의 힘이 두려웠는지, 중국 동북공정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아니면 북한의 핵과 그 세력이 무서워 등골이 서늘해진 나머지 슬며시 ‘환단고기’를 꺼내 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사실 ‘국수주의 콘텐츠’는 오래전부터 유튜브를 통해 유행해 왔다. 많은 사람이 재미와 위로 삼아 즐겨 보다가 이제는 황당한 ‘환단고기’까지 접하게 되었으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위기감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위기는 결국 기회라는 점이다. 대체로 인간은 위기 가운데서 창조성을 발휘하며, 긴장감 속에서 근육은 힘을 낸다. 어떤 이는 놀라지 않고는 좀처럼 깨어나지 않는 습성이 있다. 변화하는 역사는 모든 사람에게 긴장감을 안겨준다. 그 충격을 빨리 인지한 사람은 앞서 나아가고, 느린 사람은 그 뒤를 따른다. 빨리 나아가다 넘어지는 이도 있지만 고지를 선점하는 이도 있으니, 누가 더 지혜로운지 판가름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너무 늦지 않게 깨어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지혜일 것이다.

하나님은 새벽을 깨우는 자에게 계시를 주시고,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에게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하신다. 우리에게는 막연한 희망보다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임을 믿는 것이 필요하다. 소망의 뿌리는 허망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만족이나 위로는 더더욱 아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은 오직 노력하며 탐구하는 자에게만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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