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넓다. 어떤 지역에서는 복음이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고, 다른 지역에서는 노골적인 적그리스도적 질서와 배도가 제도와 문화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동일한 시대를 살아가지만, 지역마다 영적 계절은 다르며 역사는 복수의 층위로 동시에 전개되고 있다. 이는 복음 전파라는 '후천년적 소망의 현상'과 영적 타락이라는 '전천년적 징조'가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천년설에서 재림은 단순한 고난의 종착점이 아니라, 타락한 인류의 역사 질서를 강제로 정지시키고 그리스도의 직접 통치로 전환하는 '초자연적 개입'의 순간이다. 후천년설 역시 재림을 단순한 장식적 선언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재림은 단순한 시간표의 한 점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림의 시점을 계산하는 일에 매몰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오히려 ‘때와 시기는 아버지의 권한’이라 하시며, 이스라엘의 회복과 열방의 복음화라는 거대한 구속사의 흐름 속에서 성도가 가져야 할 마땅한 자세인 ‘깨어 있음’과 ‘진리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셨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통치가 역사 속으로 돌입하는 거룩한 문턱이다. 성전과 언약, 메시아의 성육신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과 성령 강림에 이르기까지 구속사의 모든 정점은 예루살렘을 통과했다. 선지자 스가랴는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산에 서실 것”(슥 14:4)이라 예언하며, 장차 임할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 역시 이곳을 중심으로 성취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바울은 로마서 9-11장을 통해 이스라엘의 실패가 결코 하나님 약속의 파기가 아니며, ‘이방인의 충만함이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이 부분적으로 완악하게 된 것’(롬 11:25), 그리고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선언은 유대 민족의 회복을 가리킨다. 이는 ‘이방인의 때’가 끝나고 하나님의 시계가 다시 시온을 향하는 재림 직전의 결정적 분수령이다.
전천년설과 후천년설, 재림이 고난의 정점에서 임하느냐 혹은 영광의 끝에 임하느냐 보다 중요한 사실은, 주님의 재림이 언제든 임할 수 있다는 종말론적 긴박함이다. 성경적 종말론은 단순한 시점 계산의 학문이 아니라, 거룩과 경건을 요청하는 삶의 토대다. 재림은 모든 시대를 관통하며 인간의 교만을 꺾는 하나님의 최종 선언이다. 종말론은 먼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기 전에, 오늘 우리의 삶을 진리 위에 바로 세우는 강력한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