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함경도 지역 농민들은 가뭄 때문에 동해 끝자락 즈음의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연해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후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연해주로 망명하여 군사학교를 세우고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1930년대 말에는 인구가 약 17만 명 정도에 달할 정도로 번성했으나, 당시 스탈린은 이들이 일본의 간첩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명목으로 이들을 중앙 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많은 희생 끝에 이들은 키르기스스탄의 ‘추이’ 계곡 등으로 모여들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고려인들은 놀라운 생존력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불모지에 수로를 내어 벼농사를 일구었다. 또 자신들은 굶주려도 자녀 교육에 헌신했다. 그 결과 고려인들은 소련 내에서 가장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는 소수 민족이 되었고, 의사·엔지니어·관료 등 전문직으로 진출하여 사회적 입지를 확보했다. 1950년대 이후에는 이동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기후가 상대적으로 온화하고 농사가 잘되는 비슈케크 인근으로 이주하여 현재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키르기스스탄 대부분의 인구는 이슬람 수니파인데, 고려인들은 17,000~2만 명 수준이고 그중 30%가 기독교인이다. 특히 1990년대 구소련 붕괴 직후 한국 선교사들에 의해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다. 키르기스스탄 전체 인구 700만 명 중에서 1%만 복음주의 기독교인이다. 이슬람 문화권 특성상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이 몹시 심한 상황이다.
키르기스스탄 내에서 고려인들은 기독교적 가치관이 투철하여 정직하고, 근면하고, 교육열이 높아서 매우 모범적이며 바람직한 영향력을 이슬람 국가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키르기스어, 러시아어, 한국어, 영어에 능통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현지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문화적 충격을 완화해 주는 완충 역할을 자연스럽게 수행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 교회가 고려인 신앙 공동체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내륙 고립 지역인 중앙아시아 5개국에서 고려인 엘리트들은 진정한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핵심 인재들이다. 이들이 추구해야 할 목표는 정치권력이 아닌 사회 변혁이다. 교육과 의료, 시민사회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 선진 지식과 문화를 어떻게 현지에 뿌리내리게 할 것인가, 삶의 질을 어떻게 높여 건강한 사회를 만들 것인가. 이 물음 앞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분명히 그들을 통해 그 지역을 구원하실 것이다. 고난을 헤치고, 이제는 중앙아시아의 등대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