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본토에서 테러가 시작되었다. 이슬람 과격분자들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칼을 뽑아 든 것이다. 자신의 조국이 무참히 공격당하고, 수많은 생명이 스러지고, 기반 시설이 추풍낙엽처럼 무너지는 광경—그 치욕과 울분이 이들을 폭력으로 내몰았다. 레바논 출신의 귀화 미국인 한 명은 유대교 회당에 트럭을 몰고 돌진했고, IS 지원 전력이 있는 자는 버지니아 대학에서 총격을 가해 사망자를 냈다. 미국 정부는 이제 전선이 두 곳임을 직시하고 있다. 바깥에서는 전쟁을, 안에서는 치안을 동시에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테러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반인권적 범죄다. 더 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다.
역사는 냉혹하다. 패전국은 모든 것을 내어주어야 했고, 승전국은 모든 것을 거두어 갔다. 위협 세력은 철저히 궤멸되고, 핵심 인물들은 제거되었으며, 주권은 오랫동안 승전국의 손아귀에 놓였다. 성경도 다르지 않다. 여리고 성, 아말렉 족속, 가나안 족속을 향해 하나님은 전멸을 명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명령을 끝까지 수행하지 않았다. 결과는 참혹했다. 영적 타락이 찾아왔고, 나라는 무너졌으며, 백성은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했다. 불철저한 순종이 부른 재앙이었다.
오늘날 이슬람 급진주의, 특히 시아파 극단주의의 논리는 매우 과격하고 반인류적이다. 그들은 알라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괴멸시키는 것이 가장 위대한 승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광기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즘과 공산주의는 이념의 이름 아래 수천만 명을 학살했다—자국민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 역시 보편적 인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무도 저항하지 못했던 그 폭력 앞에서, 오늘의 미국 정부는 정의의 칼을 높이 들었다. 이란 혁명수비대—사실상 '공격대'라 불러야 마땅한—는 이제 그 어떤 불법 행위도 용납받지 못하는 집단이 되었다.
이 시점에서 타협은 금물이다. 그들은 타협을 두려움의 증거로 읽을 것이고, 테러가 효과적이었다는 확신을 얻을 것이다. 그 확신은 더 많은 테러를 낳는다. 성경은 인간의 죄악이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는지를 낱낱이 증언한다. 역사도 같은 말을 반복한다. 악을 용납하고 방치할 때, 그것은 반드시 더 크고 대담한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관용이 미덕이 되려면 상대도 같은 언어를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반드시 더 큰 대가를 치른다. 하나 님은 잔인한 승리가 아닌, 정의의 승리를 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