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를 빼앗기면 끝난다
— 삼성 노사 분쟁을 그람시로 읽는다
sunlin.kr · 2026년 5월 3일 칼럼
대부분의 시선은 숫자에 꽂혀 있다. 45조 원, 터무니없다, 나라가 망한다. 그러나 그 숫자는 처음부터 함정이었다. 삼성 노조가 노리는 것은 성과급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헤게모니다. 그리고 헤게모니 전쟁은 총성 없이 시작된다.
01그람시가 말한 진지전이란 무엇인가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권력 교체에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분석했다. 하나는 기동전(war of maneuver)이다. 정면 돌파, 총파업, 혁명. 지배 세력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람시는 이 방식이 근대 서구 사회에서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국가 권력이 단순히 정부만이 아니라 학교, 언론, 교회, 노동조합, 문화 전반에 걸쳐 '동의(consent)'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람시는 진지전(war of position)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제도와 언어와 문화 속에 진지(陣地)를 하나씩 구축하며 시민사회의 헤게모니를 먼저 장악하는 방식이다. 권력은 총구 앞에서 무릎 꿇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식이 만들어질 때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진지전은 느리다. 그러나 일단 성공하면, 되돌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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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게모니는 총으로 빼앗는 것이 아니다. 언어를 장악하고, 제도를 점령하고, 상식을 교체할 때 권력은 조용히 이동한다.
—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 개념에서
02노조는 어떤 진지를 점령하려 하는가
삼성전자 초기업노조의 핵심 전략을 그람시의 언어로 읽으면, 그 설계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들의 목표는 단순한 임금 인상이 아니다. 이들이 노리는 진지는 세 층위다.
첫 번째 진지는 언어의 진지다. '노동자의 권익'이라는 프레임은 도전하기 어려운 도덕적 언어다. 이 언어로 무장하면 어떤 반론도 '반노동'으로 낙인찍힌다. 45조 원이라는 숫자는 그 자체로 목표가 아니다. 이 숫자는 대중을 흥분시키고, 조합원을 결집시키며, 언론의 초점을 성과급 논쟁에 묶어두는 동원 도구다. 진짜 싸움은 그 뒤에서 진행된다.
두 번째 진지는 제도의 진지다. 노조가 거부한 것은 사측이 제시한 금액이 아니라, 사측이 제시한 방식이었다. 회사의 제안은 본질적으로 '재량'이었다. 노조가 요구한 것은 차기 경영진도 반드시 따라야 할 '시스템'이다. OPI를 영업이익에 연동하여 명문화하면, 경영진의 보상 결정권이 구조적으로 제한된다. 이것이 관철되는 순간, 노조는 결정이 이루어지는 방식 자체를 장악한다.
세 번째 진지는 경영권의 진지다. 보상 결정 방식을 손에 넣은 다음 단계는 인사권 개입, 구조조정 거부권,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사회 참여다. 독일의 공동결정제(Mitbestimmung)는 이를 정당화하는 기성 모델로 이미 국내 노동계에서 명분으로 거론되고 있다. 진지전은 단계적이다. 한 진지를 점령해야 다음 진지가 열린다.
왜 지금인가 — 구조적 조건
이재용 회장은 지금 최대한 몸을 낮추고 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진지전'의 위협—노조와 시민단체가 경영의 참호를 점령하려는 시도—앞에서, 이 회장은 오히려 '무장 해제'라는 가장 강력한 무장을 선택했다.
그는 화려한 권위라는 성벽 뒤에 숨는 대신, 성문 밖으로 걸어 나와 대중과 직접 마주함으로써 상대가 공격할 '도덕적 명분'을 무력화하고 있다. 전용기를 없애고 일반 항공편을 이용하며, 백팩을 매고 혼자 출장을 다닌다. 이것은 진정성 있는 변화일 수 있다. 그러나 권력 역학의 관점에서 오너가 존재감을 스스로 지울수록, 그 공백은 누군가의 진입 공간이 된다. 진지전을 노리는 세력에게 지금은 보기 드문 기회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이재용 회장의 침묵과 겸손은 유약함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이 비상하겠다"는 역설적인 투쟁의 언어로 읽힌다. 그는 지금 '제국의 열쇠'를 노리는 수많은 손길 앞에서, 열쇠의 모양 자체를 바꾸는 고독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백팩 안에 담긴 것이 단순히 서류 뭉치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위기를 돌파할 '실력주의의 재건'이기를 기대해 본다.
03삼성의 맞진지전 — 보이지 않는 반격
삼성도 맞대응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응 방식 역시 전형적인 진지전의 문법을 따른다.
경제적 진지전 — '노동자'를 '파트너'로 치환하기. 삼성이 제시한 수정안에는 PSU(성과조건부 주식)의 전 직원 확대가 포함됐다. 전 직원을 주주로 만드는 것은 경제적 이해를 공유시키는 동시에, '노동자 대 자본'이라는 계급 언어를 무력화하는 전략이다. OPI 산정 기준을 'EVA 20%'와 '영업이익 10%' 중 선택하게 한 것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한다"는 노조의 프레임을 깨고, 결정 주도권을 분산시키는 효과다. 노조가 이를 거부한 이유는 바로 이 점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이 수용되면 노조의 핵심 언어가 힘을 잃기 때문이다.
제도적 진지전 — 법과 원칙이라는 방패. 위법 쟁의행위에 대한 가처분 신청은 법적 대응이지만, 동시에 '원칙을 지키는 경영진'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진지전이기도 하다. CFO를 비롯한 경영진이 대외적으로 "대화를 우선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반복하는 것도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다. 대중에게 책임감 있는 경영진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동시에, 물밑에서는 원칙론을 고수하며 노조의 조급함을 유도한다.
소통의 진지전 — 노조를 우회하기. 경영진이 직원들과 직접 소통하는 타운홀 미팅과 사내 정보 공개 확대는, '노조를 거치지 않으면 소통이 안 된다'는 노조의 존재 근거를 사전에 차단하는 우회 전략이다. 불법 대체근로 방지 가이드라인 하달 논란, 사내 게시판 '나우톡' 검열 의혹 등도 이 소통 전선에서 발생하는 마찰이다.
04미디어 전선 — 유튜브 여론은 삼성의 공작인가
현재 수많은 유튜버들이 삼성 노조를 공격하는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다. 삼성이 이를 지원하고 있는가? 진실은 이렇다. 삼성이 유튜버에게 직접 자금을 지원한다는 확인된 증거는 없다. 단,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라는 단체가 노조 집회 현장에 반대 시위대를 조직하고 유튜브에 후원금 계좌를 개설한 사실은 확인된다. 이 단체와 삼성 사이의 연결고리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유튜브 여론이 노조에게 불리하게 흐르는 데에는 삼성의 공작보다 노조 자신의 자충수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점이다. 파업 불참 직원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블랙리스트' 선언, 대통령의 비판 발언을 다른 기업 노조 탓으로 돌리는 책임 회피, DS부문 요구에 집중된 안에 DX부문 조합원들이 내부 반발하는 장면들 — 이것들이 고스란히 콘텐츠가 됐다. 더 결정적인 것은, 이재명 대통령마저 노조를 공개 비판했다는 사실이다. 진보 정부의 대통령이 노동조합을 직접 공격하는 장면은 유튜버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콘텐츠보다 강력한 여론 형성력을 가진다.
미디어 진지전에서 지금 노조가 지고 있는 것은 외부의 공격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도덕적 언어를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지전에서 언어의 진지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05진지전은 길다 —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그람시의 진지전은 단기 결전이 아니다. 이 싸움은 이번 파업으로 끝나지 않는다. 타결이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은 잠시 진지선이 고착되는 것이다. 진지를 점령하려는 시도는, 어느 한쪽이 완전히 물러설 때까지 반복된다.
이 문제는 삼성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 패권 전쟁이 국가 간에 벌어지고 있는 바로 이 시점에, 삼성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가 속도와 집중력을 잃는다면 그 결과는 기업 하나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국가 전략산업의 거버넌스 문제다.
노동자의 정당한 이해는 반드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정당한 이해와 헤게모니 교체 전략을 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 둘을 분리해서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그람시를 아는 사람이라면 안다. 진지전은 선언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진지 하나를 조용히 빼앗으면서 시작한다.
숫자에 흥분하지 말라. 진지를 보라. 누가 어떤 제도와 언어와 결정 방식을 손에 넣으려 하는지를 보라. 그것이 지금 이 싸움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진지전은 긴 시간이 필요하다. 교회는 진리의 편에 서야 한다. 오직 정의가 이기고,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다. 경건한 자들의 기도가 나라를 살리고 건강한 사회를 지켜낸다.
선린교회 담임목사 · sunli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