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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지도자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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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5-0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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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칼럼

준비된 지도자를 기다리며
— 오늘의 정치 지형, 그리고 준비한 자의 미래

sunlin.kr · 2026년 5월 10일 칼럼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이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이 사태를 단순한 노사 분쟁으로 읽는 것은 절반만 보는 것이다. 이 싸움의 뒤에는 헤게모니 전쟁이 있고, 그 뒤에는 균열 난 정치 연합이 있으며, 그 끝에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미래가 있다. 그리고 그 너머에, 모든 것을 셈하시는 분이 계신다.

01숫자는 미끼였다

대부분의 시선은 숫자에 꽂혔다. 45조 원, 영업이익의 15%, 상한선 폐지. 언론은 연일 그 숫자를 헤드라인에 올렸고, 대중은 분노하거나 부러워했다. 그러나 그 숫자는 처음부터 협상의 목표가 아니었다. 대중을 흥분시키고, 조합원을 결집시키며, 언론의 초점을 특정 지점에 묶어두는 동원 수단이었다. 진짜 싸움은 그 숫자 뒤에서 시작됐다.

"

헤게모니는 총으로 빼앗는 것이 아니다. 언어를 장악하고, 제도를 점령하고, 상식을 교체할 때 권력은 조용히 이동한다.

— 안토니오 그람시, 진지전의 논리

02왜 이 진지는 무너지고 있는가

진지전은 도덕적 언어를 잃는 순간 무너진다. 삼성 노조는 스스로 그 언어를 허물었다. 파업 불참 직원을 강제 전배·해고 1순위로 삼겠다는 블랙리스트 선언이 공개됐다. 동료를 협박하는 노조는 노동자의 대변자가 아니라 압력 집단이 된다. 이것이 공개되는 순간, 도덕적 언어의 진지는 스스로 무너진다. DS부문에 집중된 요구안에 DX부문 조합원들이 내부 반발하면서 공동교섭단마저 분열됐다. 단일 전선이 내부에서 먼저 무너진 것이다.

더 깊은 구조적 맥락이 있다. 국가가 K-칩스법으로 3년간 21조 원의 법인세를 감면해주며 지켜온 산업에서, 연봉 1억 5,800만 원을 받는 노동자들이 45조 원을 요구한다. 조선·섬유·자동차 부품 공장들이 문을 닫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이 요구 사이의 간격은 어떤 명분으로도 메울 수 없는 것이었다. 여기에 노란봉투법이 통과된 직후 이 파업이 터진 것도 불운한 타이밍이었다. 법 자체의 취지와 무관하게, 두 사건이 겹치면서 노동계 전체를 향한 반감이 증폭됐다.

그리고 결정적인 일이 일어났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자기만 살겠다는 과도한 요구"라고 비판했다. 진보 정부의 대통령이 노동조합을 공개 비판하는 장면은, 어떤 유튜버도 어떤 언론사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진지전에서 아군의 배후 사격은 전선 전체를 붕괴시킨다.

마지막으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강력한 역설이 있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전 공장을 'AI 자율공장(AI Driven Factory)'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AI가 스스로 공정을 판단하고 실행하며, 휴머노이드 로봇이 현장을 운영하는 구조다. 파업 위협은 이 전환을 늦추지 않는다. 오히려 앞당긴다. 인적 변수를 제거할 명분을 스스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구조적 역설

이재용 회장은 지금 가장 낮은 자리에 있다. 전용기를 없애고, 백팩을 메고, 혼자 출장을 다닌다. 진정성 있는 변화일 것이다. 그런데 권력의 속성상, 오너가 스스로 존재감을 낮출수록 그 공백은 누군가의 진입 공간이 된다. 역설은 이것이다. 가장 몸을 낮춘 자가 지금 가장 큰 국민적 신뢰를 받고 있다. 겸손은 때로 가장 견고한 진지다.

03빚진 정부의 딜레마

이재명 대통령의 비판을 단순한 발언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 정부의 탄생 구조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진보 정당 연합, 진보 언론, 민주노총·한국노총 계열, 정치 유튜브 연합이 함께 만들어낸 정부였다. 노조는 단순한 지지 세력이 아니었다. 권력 생산의 공동 투자자였다. 그 투자에 대한 배당이 노란봉투법이었다. 이 정부는 노조에게 적지 않은 빚을 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집권 직후부터 한 번도 평지를 걸은 적이 없다. 사법 리스크라는 아킬레스건, 전직 대통령 처리를 둘러싼 국론 분열, 선관위 논란이 남긴 제도 신뢰의 상처, 입법 폭주에 대한 피로감, 추경을 거듭하며 불어나는 재정 부담, 미국의 통상 압박과 지정학적 전쟁 리스크까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집권했는데, 집권 후에도 히말라야 안에 있는 형국이었다.

이 첩첩산중 속에서 삼성 파업은 하나의 경보음이었다. 반도체 생산 차질은 수출 지표, 세수, 환율, 외국인 투자가 동시에 흔들리는 연쇄를 의미했다. 한국 경제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정부로서는 이 전선만큼은 묵과할 수 없었다. 대통령은 결국 채권자에게 "이것만은 안 된다"고 말했다. 빚진 정부가 채권자를 거슬렀다는 것 — 이것은 국익의 논리가 정치적 채무 관계를 압도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국민은 그 판단에 동의했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노사 분쟁이 아니라 한국 정치 연합의 내부 단층선이 처음으로 공개된 역사적 장면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04기찻길 옆에서 잠든 아이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곳이 있다. 제1야당이다. 집권 연합이 내부에서 균열나고, 경제는 흔들리며, 귀족 노조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이 임계점에 달해 있다. 어떤 전략가도 이보다 좋은 조건을 설계하기 어렵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그 기찻길 옆에서 잠들어 있는 아이가 되었다. 폭풍 같은 기차가 지나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 국민의 힘이 민주당의 이중대라 불리는지 이해가 간다.)

여기서 냉정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상대방의 자멸을 기다리는 자는 자멸한 자리를 물려받을 뿐이다. 그 자리에는 이미 부채와 균열과 분노가 가득하다. 반사이익으로 얻은 권력에는 비전이 없고, 비전 없는 권력은 집권하는 순간 같은 혼돈을 반복한다. 한국 정치가 수십 년간 보여온 패턴이 정확히 그것이었다.

기차가 지나간 뒤 눈을 떴을 때, 그 손에 무엇이 쥐어져 있어야 하는가. 언어인가, 비전인가, 신뢰인가. 아니면 여전히 빈손인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정치 분석이 끝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더 깊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05하나님이 세우시는 자 — 사사기의 약속

오랫동안 그랬지만, 여전히 지금도 제1야당의 행보가 의심스럽다. 현 정부가 스스로의 길에서 헤매고 있는데도, 이에 대응하는 어떤 전략도,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도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금 서로 치고받으며 싸울 것이 아니라, 그 에너지로 반성하고 대안을 마련하며 가장 현명한 주자를 만들어내야 한다. 내부의 갱신 없이 외부의 기회는 없다.

누가 이 시대를 이끌 자격이 있는가. 이 물음은 정치학의 언어만으로는 답할 수 없다. 요셉은 감옥에서조차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억울함이 그를 무너뜨리지 않았고, 지연이 그를 좌절시키지 않았다. 광야는 그를 망가뜨리지 않았고, 도리어 빚어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시간이 사람을 만든다.

상대방의 자멸이 자동으로 준비된 자의 때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지금은 하나님이 세우시는 자가 필요하다. 사사기는 이 패턴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이스라엘이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세우셨다. 사람이 만든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가 시대를 바꿨다.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자가 나라를 새롭게 한다.

"

하나님의 셈법은 선거 날만이 아니라, 광야의 모든 날을 계산에 넣는다. 백성이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일하셨다. 오직 기도로 엎드릴 때 하나님의 자비가 베풀어진다.

진지전은 끝나지 않았다. 삼성 노조의 진지전은 무너지고 있지만, 이 사회의 더 큰 진지전 — 어떤 가치가 이 나라의 공적 언어가 될 것인가, 누가 다음 세대를 위한 비전을 쥐게 될 것인가 — 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싸움의 결말은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다.

지금은 하나님이 세우시는 자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오직 백성들이 부르짖을 때 준비된 자를 세우신다.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자가 나라를 새롭게 한다. 오직 기도로 엎드릴 때 하나님의 자비가 베풀어진다.


선린교회 담임목사 · sunl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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