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에 실은 글
Claude 를 통해서 작성한 글
비난과 책임 사이 — 네팔 재난이 드러낸 기후 담론의 균열
하나의 재난, 두 개의 서사
2026년 9월, 히말라야에서 발생한 대규모 빙하·암반 붕괴는 1,000명이 넘는 생명을 앗아갔다. 이 참사가 보도된 직후, 하나의 서사가 빠르게 퍼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2025년 1월 재해 조기경보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끊었고, 그것이 이번 참사를 불렀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명쾌한 인과관계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서사를 하나씩 해체해보면, 우리는 훨씬 더 복잡하고 정직한 그림과 마주하게 된다.
사실관계부터 정리하자면, 미국은 실제로 2025년 1월 나사(NASA)와 국제개발처(USAID)가 공동 운영하던 네팔 산사태·홍수 감시 프로그램(SERVIR-HKH)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면적 대외원조 동결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약 1년 4개월 뒤 대재앙이 발생했다. 시간적 인접성은 존재한다. 그러나 시간적 인접성이 곧 인과관계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이번 재난의 직접 원인은 빙하·암반 붕괴라는 지질학적·기후적 현상이었고, 미국의 예산 삭감이 이 현상 자체를 유발한 것은 아니다. 조기경보 체계의 공백이 피해 규모를 키웠을 가능성은 있지만, 이것과 재난 자체의 발생 원인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가려진 일차 책임자
더 중요한 것은, 이 논쟁이 진짜 물어야 할 질문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네팔의 재난 대응 역량 부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네팔 내무부 자료만 봐도 매년 평균 150명이 홍수·산사태로 목숨을 잃는다. 2024년 대홍수 당시에도 "기상청이 닷새 전 경보를 발령했지만 실질적 대비는 없었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심지어 당시 총리는 재난 발생 시점에 해외 순방 중이어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수년간 재난 대비 개선을 권고했지만 대부분 이행되지 않았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산사태 관련 소관 부처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 명확한 책임 주체조차 없다는 지적도 오래된 것이다.
즉, 네팔의 재난 대응 실패는 특정 외국 원조 프로그램의 존폐와 무관하게 이미 만성화된 구조적 문제였다.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할 일차적 의무를 지닌 주체는 그 나라의 정부이지 타국의 자선이 아니다. 외국의 원조는 법적 의무가 아니라 재량적 지원이며, 그것이 끊겼다고 해서 국내 통치의 실패를 정당화하거나 가릴 수는 없다. 트럼프의 결정이 최선이었다고 옹호할 수는 없어도, 그 결정을 이번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훨씬 더 가깝고 직접적인 책임 주체로부터 시선을 돌리는 효과를 낳는다.
과학적 합의와 음모론적 회의 사이
이 논쟁은 자연스럽게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 애초에 기후변화라는 전제 자체가 신뢰할 만한가. 이 지점에서는 분명한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인위적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의 지배적 원인이라는 명제는 IPCC의 여러 차례 평가보고서, 수만 편의 동료심사 논문 분석, 그리고 서로 다른 나라·기관이 독립적으로 산출한 온도·해양·빙하 데이터가 수렴하는 결과다. 2009년 '기후게이트' 사건처럼 조직적 조작 의혹이 가장 구체적으로 제기됐던 사례조차, 영국과 미국의 최소 6개 이상의 독립 조사기관에서 조작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 이 정도로 다층적이고 국제적으로 재현된 결론을 "카르텔의 조작"으로 설명하려면, 그 카르텔이 통제해야 할 데이터와 기관의 규모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방대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런 규모의 조작을 뒷받침하는 물증은 나온 적이 없다.
동시에, 회의론이 완전히 근거 없는 것도 아니다. 연구비 지원 구조가 특정 키워드 삽입을 유도하는 '제도적 왜곡'은 학계 스스로 인정하는 문제이고, 실제로 정반대 방향(정부가 "기후변화"라는 표현 삭제를 요구한 사례)도 존재했다. 이는 기후과학의 핵심 결론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연구비 행정 시스템의 정치적 오염 가능성에 대한 정당한 우려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타당한 절차적 비판이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오인되거나, 반대로 근거 없는 음모론이 절차적 비판의 정당성에 편승하게 된다.
책임 배분이라는 진짜 논쟁
마지막으로 남는 질문은 책임의 몫이다. 미국은 역사적 누적 배출량 1위, 중국은 현재 연간 배출량 1위다. 이 중 어느 지표를 '도덕적 책임의 기준'으로 삼을지는 과학이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정치철학적 선택이다. 그리고 이 선택은 종종 각 진영의 이해관계에 따라 편의적으로 동원된다. 여기서 특히 짚어야 할 사실은, 세계 최대 현재 배출국인 중국이 UN기후체제 안에서 여전히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어 손실과 피해 기금 등에 대한 재정 분담 의무 자체를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돈을 내고 배출을 눈감아 받는다"는 구도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최대 배출국이 재정적 책임에서 제도적으로 면제되어 있다는 뜻이다. 또한 파리협정 체제는 각국의 자발적 감축목표에 기반할 뿐 이를 어겨도 제재할 법적 장치가 없다는 점에서, "발표한다고 배출이 줄어드는 시스템은 아니다"라는 지적은 타당한 구조적 비판이다.
결론
이 모든 논의를 관통하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 다른 층위의 주장을 뒤섞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난의 직접 원인(자연 현상)과 피해 확대 요인(대응 역량 공백)은 다르다. 외국 원조의 유무와 자국 정부의 통치 책임은 다르다. 기후변화의 과학적 실재성과 기후 담론을 둘러싼 정치·재정 구조의 공정성은 다르다. 그리고 책임의 역사적 근원과 오늘의 실천적 우선순위 역시 다른 질문이다. 트럼프의 원조 중단을 이번 참사의 원흉으로 지목하는 것도, 기후과학 전체를 조작된 카르텔로 치부하는 것도 모두 이 층위들을 섞어버린 결과다. 정직한 결론은 더 밋밋하지만 더 견고하다 — 네팔의 비극은 기후변화라는 거시적 압력과, 만성적인 자국 통치 실패와, 우연히 겹친 외국 원조 중단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이며, 그중 가장 직접적이고 통제 가능했던 변수는 다른 무엇보다 네팔 자신의 재난 대응 체계였다는 것이다. 비난의 화살을 어디로 돌리느냐보다, 다음 재난이 오기 전에 무엇을 실제로 고칠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이 더 생산적인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