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명절에는 나름의 특별한 강점이 있었다. 특히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이 그리움 끝에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기에 그 의미가 더욱 컸다. 그러나 어르신들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 가면서 모임의 성격 자체도 달라졌고, 이제는 대가족이 아닌 이상 과거의 명절 분위기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희생적이었던 분위기는 이제 편리함과 간결함이 기본이 되었다. 차례를 지내는 가정도 급격히 줄었고, 성묘 역시 필수가 아니라 선택하거나 생략하는 일이 늘고 있다. 오히려 명절 식당가는 귀한 손님을 모시는 장소가 되었고, 아예 명절 음식을 장만하지 않는 가구도 늘고 있다. 평소에도 명절 못지않게 잘 먹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명절은 조상을 기억하는 날이라기보다 가족을 만나는 날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좋은 장소에서 즐거운 시간을 나누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과거에는 명절에 혼자 있는 것을 우울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오히려 홀로 명절을 보내거나 가장 친근하고 반가운 사람과만 함께하는 쪽을 선호한다. 스트레스보다는 즐거움을 택하는 것이다. 불과 몇십 년 만에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명절 풍경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해도,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저마다의 취미생활을 위해 명절을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고 해서, 사회 전체가 지녀야 할 사회성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가족이라는 끈끈한 연대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연결고리다. 물론 아무리 천륜이라 해도 너무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관계이기에, 가족 간의 정을 함부로 끊어내는 것 역시 매우 어리석은 행동임을 유념해야 한다.
특히 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신앙 공동체다. 가족이 천륜이라면, 성도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맺어진 형제와 자매다. 어쩌면 가족보다도 더 자주 만나는 친밀한 사이일 수 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존중하고, 도우며, 은혜를 나누고, 격려하며, 때로는 권면하여 바른길로 인도하는 자들이다. 특히 가족 간의 규율마저 사라져 가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교회야말로 가장 선한 가치를 함께 붙들고 있는 가치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더 좋은 가치를 위해 협력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소망하며, 함께 희생한다. 뿐만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면류관을 향해 헌신하는 자들이다. 우리에게는 굳이 명절이 필요 없다. 매 주일이 곧 명절이며 함께 모이는 날이다.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의 양식을 채우고, 몸과 영혼을 건강하게 지켜간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하시며, 끊임없이 은혜를 베푸신다. 우리에게는 매 주일이 명절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