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던 악재들이 터지고 있다. 지혜자들과 통치자들의 막연했던 꼼수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자유가 서서히 방종으로 흘러갔고, 누군가는 그 방종을 자기 이익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깨어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 답답한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고, 서서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미디어는 엉뚱한 것을 찬양하고 상식에 어긋난 것을 주장했다. 분명히 악한 것인데 인권으로, 자유로, 약자 보호로, 소수자의 권리로 포장했다. 다른 가치에는 호의적이면서 유독 기독교적 가치만큼은 배격하고 무시했다. 마치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처럼.
시간이 한참 지나 논란과 다툼이 끊이지 않고 세상이 흉흉해지고 가치관의 혼란을 몸소 겪고 나서야, 바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침묵하던 대중이 환호했다. 올바름에 대한 목마름이 진정한 자유의 생수를 갈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한참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기울어진 잣대가 눈에 박힌 사람들에게 이 현상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방해 공작도 시도되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국정이 흔들렸고, 엉뚱한 곳에 낭비된 국고는 한계점에 다다랐다.
다행히 일찍 눈을 뜬 나라들이 있었다. 스웨덴, 미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는 이민과 치안과 국경의 문제에서 정책의 키를 돌렸다. 그러나 옛 길로 돌아서는 일은 거센 저항과 시험을 동반하고 있다. 영국은 정부가 흔들리는 사이 개혁당이 여론조사 선두에 섰고, 프랑스는 학교 문제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가 전국으로 번졌다. 55만 명이 거리로 쏟아졌고, 체포된 사람만 6천 명을 넘었으며 대부분이 미성년자였다.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무엇을 자유라 부르고 무엇을 방종이라 부를 것인가. 누가 약자를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악을 포장하고 있는가. 진리를 떠난 자유는 결국 방종이 되고, 방종은 사람들에게 청구서를 돌린다. 그 청구서를 받아 든 대중이 지금 목말라하고 있다. 교회는 바로 이 자리에서 소금이어야 하고 빛이어야 한다. 북한은 이미 지금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쓸 데가 없다. 이 나라가 기울어진 잣대 위에서 흔들릴 때, 바른 목소리를 낼 사람이 필요하다. 교회가 바로 그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