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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지지부진한 사법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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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06-08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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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부분의 사람은 사법절차에 대해서 답답함을 느낀다. 사법절차는 답답함 뿐만 아니라 억울함, 부당함을 해소하기 위한 최종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이런 사법절차가 오히려 악한 사람들에 의해서 악용되고 있다. 재판 거리도 되지 않지만, 일단 법에 호소한다. 심지어 거짓 증언과 거짓 증거를 버젓이 내놓는다. 엉뚱하게 해석하고, 심지어 재판 절차를 지연시키고 본질을 훼손하기 위한 방대한 양의 증거물을 제시한다. 만약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면 지지자들을 동원해서 시위까지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심지어 피고인이 여러 가지 핑계로 재판에 참석하지 않기도 한다. 크게 아프지 않은데 휠체어를 타고 출석하기도 하고, 기자들 앞에서 호소하기도 한다.

결국 재판 절차는 하염없이 길어지고, 그로 인한 사법부의 고충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중된다. 그러니 그 과정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답답한 채 오랜 세월을 지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법절차는 과연 억울한 사람을 위한 것인가, 악한 사람을 위한 것인가? 며칠 전 미국의 유력한 대선 후보가 유죄판결을 받았다. 놀랍게도 재판 거리도 되지 않은 죄목이지만, 뉴욕주 검사와 판사는 억지스럽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재판 과정을 지켜보던 수많은 시민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동안 선거 운동을 하면서 기부된 선거 모금액보다 더 많은 모금액이 단 하루 만에 모금되었다. 그만큼 시민들이 사법절차와 판결에 대해서 분노하고, 오히려 유죄판결을 받은 후보를 지지한다는 표현을 모금액에 쏟아부었다.

우리나라의 사법 정의도 판사에 따라 다르다. 이미 좌파 성향의 판사들이 대거 사법부에 진을 치고 있으면서 놀랍게도 파벌을 형성하고 있다. 모든 재판은 재판관 개개인의 판단을 최우선으로 해야 함에도 이들은 버젓이 세력을 과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현재의 사법부를 심판하실 날이 머지않았다. 우리는 정당한 사법 정의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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