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칼럼 · 2부
2부 — 정치가 경제를 먹는 법

내 세금은
누가 먹고 있는가

재선 인센티브, 카르텔, 그리고 지역 소멸의 구조
이번 편 목차
4장 "왜 정치인은 내 돈을 자기 편에게 주는가?" — 집권 인센티브의 구조 5장 "도청사를 아방궁으로 짓는 이유" — 지자체와 국회의 예산 카르텔 6장 "10조를 퍼부었는데 왜 지방은 계속 죽어가는가?" — 지역 소멸과 보조금의 역설
2부 대표 이미지
4장

"왜 정치인은 내 돈을
자기 편에게 주는가?"

집권 인센티브의 구조

1부에서 우리는 돈을 쓰는 방식이 경제의 효과를 결정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에서 정부의 돈은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흘러가고 있을까요? 여기서 경제학만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정치학이 함께 들어와야 합니다.

정치인도 이기적 행위자다 — 공공선택론

우리는 흔히 정치인을 두 종류로 나눕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좋은 정치인과, 사익을 챙기는 나쁜 정치인. 그런데 경제학에는 이 구분을 뛰어넘는 이론이 있습니다.

공공선택론(Public Choice Theory)입니다. 198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뷰캐넌이 정립한 이론으로, 핵심은 단순합니다.

"정치인도 시장의 행위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 제임스 뷰캐넌, 공공선택론

이것은 정치인이 나쁜 사람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구조 안에 놓이느냐에 따라 평범한 사람도 나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정치인의 생존 방정식은 명확합니다. 당선 → 지지기반 유지 → 재선 → 권력 유지. 이 방정식에서 '나라 살림'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세금 생태계의 구조 — 누가 먹는가

1부에서 박정희 모델은 세금을 '생산'에 연결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디에 연결되어 있습니까?

현재 한국의 세금 순환 구조
국민 세금
국회 (예산 의결)
← 정치인
중앙부처 (정책 설계)
← 고위공무원
지자체 (집행)
← 지방정치인 + 지방공무원
위탁사업 발주
← 정책관련 업체·용역
시민단체 수탁
← 정치낭인·운동권 출신
성과 없음 → 다음 해 재신청 → 반복
세금이 이 생태계 안에서만 순환하고 시장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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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합법인가 — 이것이 핵심

이 구조의 가장 무서운 점은 합법적이라는 것입니다.

합법적 세금 전용의 4가지 경로
1보조금은 공모 절차를 거칩니다 → 형식적 정당성 확보
2시민단체는 비영리법인입니다 → 세금 면제, 감사 느슨
3용역 보고서는 납품 완료됩니다 → 성과 달성으로 처리
4정치낭인의 위원회 참여는 '민간 전문가 활용' → 명분 있음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 세금을 정치 자원으로 전환 — 이것을 '지대추구(Rent-seeking)'라 합니다

지대추구란 생산 없이 제도적 위치를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행위입니다. 박정희 모델이 세금을 생산에 연결했다면, 이 구조는 세금을 제도적 위치 유지에 연결합니다.

여야가 달라도 구조는 같다

진보 정권이 들어오면 노동·환경·여성·평화 관련 단체가 보조금을 받습니다. 보수 정권이 들어오면 안보·종교·기업 관련 단체가 보조금을 받습니다. 수혜자만 교체될 뿐, 구조는 그대로입니다.

만쿠르 올슨(Mancur Olson)은 이런 연합체가 커질수록 국가 전체의 경제 성장률이 하락한다는 것을 실증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분배연합(Distributional Coalition)'이라고 불렀습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 하락과 이 생태계의 팽창은 무관하지 않습니다.

정치인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재선을 위해 지지기반을 챙기는 것은 구조적으로 합리적 선택이다. 문제는 그 구조가 세금을 '생산'이 아닌 '정치 생태계 유지'에 연결해 놓았다는 것이다.

5장

"도청사를 아방궁으로
짓는 이유"

지자체와 국회의 예산 카르텔

인구 3만 명의 군에 수백억짜리 신청사가 들어섰습니다. 군민들은 처음에 반겼습니다. 3년 후 그 군은 유지비를 감당 못해 허덕입니다. 왜 처음부터 이걸 몰랐을까요? 아니, 알면서도 지은 걸까요?

국회 예산의 실제 — '쪽지 예산'의 구조

매년 가을, 국회에서는 다음 해 예산안을 심의합니다. 그 과정에서 '쪽지 예산'이라는 관행이 있습니다.

쪽지 예산의 작동 방식
1의원실이 지역구 사업 예산을 쪽지로 제출합니다
2예결위 밀실에서 여야 협상이 진행됩니다
3여야 상호불가침 협약: "내 것 안 건드리면 나도 네 것 안 건드린다"
4전체 예산이 증액 통과됩니다
삭감을 주장하는 의원은 다음 협상에서 고립됩니다 — 소신이 불리한 게임 구조

이것이 여야가 온갖 문제에서 싸우면서도 예산 문제에서만큼은 암묵적으로 단결하는 이유입니다. 이념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지자체장의 생존 방정식

국회의원과 마찬가지로 지자체장도 임기가 있고 재선이 필요합니다. 지자체장에게 대형 청사·대형 사업은 왜 합리적 선택인가를 냉정하게 보면 이렇습니다.

아방궁 청사가 합리적인 이유
1임기 4년 안에 착공 → 가시적 치적
2완공·운영 비용은 다음 사람 몫
3건설 기간 중 지역 고용 단기 창출 → 지역 민심 확보
4지역 건설업체 수주 → 선거 자금의 원천
5지역 언론 광고 집행 → 긍정 보도 확보
반대하면 "지역 발전 반대"라는 프레임이 작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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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무도 막지 못하는가 — 4중 잠금장치

잠금장치 1
자기 결정 구조

세비는 국회의원이 결정. 청사 예산은 지자체장이 편성. 자신의 보수를 자신이 결정하는 구조에서 절제는 구조적으로 불가능.

잠금장치 2
임기 내 소비 인센티브

4년 임기 안에 치적을 만들어야 함. 유지비는 다음 사람 몫. 크게 짓는 것이 항상 합리적 선택.

잠금장치 3
지역 이해관계 결집

건설업체·지역 언론·지방의원이 모두 이해관계로 연결. 반대 세력이 구조적으로 형성되지 않음.

잠금장치 4
유권자의 합리적 무지

청사 낭비를 파악하는 비용이 너무 높음. 내가 반대해서 바뀔 확률도 낮음. 무관심이 합리적 선택.

예산 낭비는 불법이 아닙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아무리 낭비해도 형사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 구조에서 도덕적 자제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새만금 잼버리 — 병리의 압축판

2023년 새만금 잼버리는 이 구조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 수년간 2,900억원의 예산이 집행되었습니다. 그런데 화장실·그늘·배수 등 기본 인프라가 전무했습니다. 4만 명의 세계 스카우트 대원들이 폭염과 홍수 속에 철수했습니다.

핵심 질문

그 예산은 어디로 갔는가가 끝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것 자체가 증거입니다. 예산의 목적이 '행사의 성공'이 아니라 '예산의 집행'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습니다.

박정희 시대 관료는 실패하면 자리를 잃었습니다. 지금 관료와 지자체장은 실패해도 추가 예산을 받습니다. 이 인센티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새만금 같은 사태는 반복됩니다. 형태만 바뀔 뿐입니다.

국회와 지자체는 경쟁자가 아니라 공모자다. 쪽지 예산과 아방궁 청사는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재선 인센티브와 책임 부재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다. 예산 낭비는 불법이 아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6장

"10조를 퍼부었는데
왜 지방은 계속 죽어가는가?"

지역 소멸과 보조금의 역설

정부는 지방 소멸을 막겠다며 2031년까지 10조원을 붓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돈을 더 줄수록 지방은 더 빠르게 소멸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연일까요?

숫자가 말하는 현실

2026년 2월 기준 소멸위험 현황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 중 소멸위험지역 138곳 — 전체의 60.2%
광역시 부산 소멸위험지수 0.490 — 광역시 최초 소멸위험단계 진입
전남·경북·강원·전북 소멸위험지수 0.4 미만

인구가 이렇게 급감하는데 지자체 예산과 청사는 오히려 커지고 있습니다. 이 역설의 구조를 봐야 합니다.

보조금이 자립을 파괴하는 메커니즘

보조금 의존의 악순환
1중앙 보조금 의존 심화
2자체 산업 육성 동력 소멸
3양질의 일자리 부재 (소멸위험 지역 전문직 비중 15.4%, 저숙련직 41.9%)
4청년 수도권 유출
5더 많은 보조금 요구 → 더 깊은 의존
보조금은 소멸을 막지 않는다 — 소멸 속도를 늦추면서 의존성만 심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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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소멸과 청사 확장의 역설

인구가 줄수록 지자체 존재 정당성이 흔들립니다. 그러면 지자체장은 가시적인 건물로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청사가 기관 생존의 상징물이 됩니다. 공무원 수는 인구와 무관하게 자체 논리로 증가하고, 청사는 공무원 수에 맞춰 짓습니다. 인구는 이 계산에 없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지자체 통폐합에 대한 저항입니다. 인구 감소 → 지자체 통폐합 압력 → 통폐합은 지자체장·지방의원 자리 소멸을 의미 → 결사 반대 → 저항 수단으로 대형 사업·청사로 존재감 과시. 인구 소멸이 오히려 낭비를 가속화하는 역설입니다.

일본과 한국의 선택 — 구조를 바꾼 것과 돈만 부은 것

항목일본의 선택한국의 선택
지자체 수3,200개 → 1,700개 강제 통합226개 현행 유지
재정 책임악화 지자체 자구 책임 부과소멸할수록 보조금 증가
지역 전략살릴 지역과 정리할 지역 구분모든 지역 동등 지원 원칙
결과부분적 성공, 구조 변화소멸 가속, 의존 심화

일본도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구조를 바꾸려 한 것돈만 부은 것의 차이는 명확합니다.

지자체가 직접 만든 소멸 가속

보조금을 받아 지역을 살리는 사업을 해야 할 지자체가, 오히려 지역 소멸을 가속시키는 구조가 있습니다.

무분별한 아파트 개발 허가는 외지 투기자를 유입시켜 지역 주거비를 올리고 청년 정착을 어렵게 만듭니다. 대형 공공시설 건립은 기존 소상공인 생태계를 붕괴시킵니다. 학교보다 청사와 축제를 선택하면서 학생 수 감소 → 학교 통폐합 → 젊은 가족 이탈이 가속됩니다.

가장 정직한 진단

지방자치제는 주민을 위한 행정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지자체 생태계 종사자들을 위한 행정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주민이 소멸해도 지자체는 살아남으려 하고, 그 생존 본능이 오히려 주민 소멸을 가속시킵니다.

보조금은 지역 소멸을 막지 않는다. 소멸 속도를 늦추면서 의존성을 심화시킬 뿐이다. 지자체의 생존 본능이 주민의 소멸을 가속시키는 구조, 이것이 지방자치 30년이 만들어낸 자기완결적 실패 구조다.

다음 편 예고 · 3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2부에서 우리는 정치 생태계가 어떻게 세금을 먹는지를 보았습니다. 나쁜 사람이 모인 것이 아닙니다. 나쁜 구조가 평범한 사람들을 나쁘게 행동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폭주를 멈출 수 있습니까? 역사는 이런 구조가 바뀐 사례를 알고 있습니다.

시리즈 전체 보기
1부돈의 흐름을 이해하다 2부정치가 경제를 먹는 법 3부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