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추기경은 종신에 가까운 권위를 행사한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4년 임기로 실질적인 협상을 이어간다. 정부 입장에서 이 두 종교는 신뢰할 수 있는 협의 파트너다. 개신교는? 올해 총회장 이름을 알아도 6개월 후엔 다른 사람이다.
종교인 과세, 사립학교법 개정, 코로나19 집합금지. 이 모든 사안에서 가톨릭과 불교는 테이블 안에 있었고 개신교는 테이블 밖에서 반발했다. 테이블 밖의 목소리는 언론에서 '몽니'가 된다. 창구가 없으면 정당한 주장도 잡음으로 처리된다.
200개 교단, 1년짜리 총회장들. 이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구조다. 그러나 구조의 문제는 구조적 해법이 필요하다. 진심들이 낭비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신천지는 어떻게 수십만 명의 개신교인을 빼앗아갈 수 있었는가. 한국 개신교의 구조적 공백을 전략적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교단마다 이단 목록이 다르다. A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단체를 B교단은 아직 규정하지 않았다. 담임 목사가 확신 있게 경고하려 해도 교단의 공식 입장이 없으면 말하기 어렵다.
피해자 가족이 도움을 요청할 단일 창구도 없다. 개교회에서 노회로, 노회에서 총회로 떠밀린다. 총회에서 총회로 교단을 옮겨 다닌다. 이것은 신학의 다양성이 아니다. 피해자를 방치하는 구조적 무책임이다.
원로회의가 이단 통합 규정 기구를 운영한다면, 단일 기준과 단일 창구가 생긴다. 교단은 자신의 신학을 유지하면서도 이단 판단의 공신력은 통합 기구가 담보한다. 정혜숙 씨 같은 어머니가 열일곱 군데를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2023년 기준 한국 장기 선교사는 21,917명, 173개국. 인구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같은 도시에서 같은 민족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한국 선교사들이 서로 모르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교단이 다르다는 이유로 언어 학교를 따로 운영하고, 각자의 예산을 각자 집행한다.
이 문제는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 유럽의 선교사들도 동일한 교단별 분열을 안고 선교지에 온다. 교단의 벽은 태평양을 건너도 사라지지 않는다.
원로회의가 교단 초월 선교 허브를 운영한다면 구조가 바뀐다. 나아가 선교 상사(Mission Trading Company)는 더욱 강력한 해법이다. 현지에서 합법적 사업체를 운영하며 선교사들에게 비자와 체류 근거를 제공하고, 현지인 고용을 통해 일상에서 복음을 나누며, 수익 일부로 은퇴 선교사 노후를 지원한다. 22,000명이 각자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