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석 달 동안, 그들은 아무것도 발표하지 않았다.
매월 첫째 주 화요일 이른 아침 일곱 시. 서울 마포구의 작은 건물 3층에 열두 명의 노목사들이 모였다. 나중에는 열셋이 되었고, 그다음 달에는 열다섯이 되었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조용히 말을 전했다. 과장 없이, 선동 없이. 그냥 이런 모임이 있다고.
모임에서는 주로 들었다. 각자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나누었다. 선교지 이야기, 교단 총회 이야기, 기독교 학교가 받는 압박들. 말하는 사람이 울기도 했다. 듣는 사람이 눈을 감기도 했다. 기도로 끝났다. 매번.
아무것도 발표하지 않은 석 달이었지만, 무언가가 익어가고 있었다. 씨앗이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김다니엘은 두 달 동안 기사를 쓰지 못했다. 이야기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야기가 너무 컸다.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였다.
자신이 쓴 기사들을 다시 읽었다. 미션스쿨 예배 거부, 교회 세습 비판. 모두 진심으로 쓴 기사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어떤 것들은 맥락이 빠져있었다. 나쁜 의도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한 방향으로만 작동했다.
그날 밤 그는 처음으로 다른 방향의 첫 문장을 썼다.
지난 석 달, 서울의 한 작은 건물에서 매월 첫째 화요일 이른 아침 정기 모임을 갖고 있는 은퇴 목사들이 있다. 현재 15명. 각자 다른 교단 출신이지만 하나의 공통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한국 개신교에는 전체를 대표하는 공식 창구가 없습니다. 정부가 종교 정책을 입안할 때 개신교는 협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강민준 목사(68)의 말이다.
이들이 구상하는 것은 전체 등록 교인의 직접 투표로 선출되는 교단 초월 대표 원로 지도자. 이단 규정의 통합, 선교 파송의 효율화, 기독교 교육 보호까지 아우르는 구체적 기능이 구상되어 있다.
아직 공식 명칭도, 출범 선언도 없다. 하지만 이 조용한 모임이 한국교회에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기사는 이른 새벽 포털에 올라갔다. 클릭 수가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다니엘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공유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목사나 교회 지도자가 아니었다. 평범한 성도들이었다. 30대 직장인, 50대 집사, 60대 권사.
그리고 기사가 나온 지 사흘째, 강민준의 이메일에 편지 하나가 도착했다.
강민준 목사님께.
저는 교인 80명짜리 작은 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밝히기 어려운 것은 혹시 이 편지로 인해 교회가 불이익을 받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두려움 자체가 이미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증거겠지요.
지난 몇 년간 지역 신문과 인터넷에서 교회를 향한 기사들을 읽으며 홀로 싸웠습니다. 성도들이 동요하고, 젊은이들이 떠났어요. 저는 이것이 무엇 때문인지 알면서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말하면 편향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 뻔했으니까요.
저 같은 목사가 전국에 수천 명은 있을 것입니다. 총회장이 될 수 없고, 언론에 나갈 수 없는 사람들. 그런 우리에게도 대신 싸워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목사님, 부디 시작해 주십시오.
강민준은 그 편지를 세 번 읽었다. 그런 우리에게도 대신 싸워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기사가 나온 지 일주일 후, 어떤 기독교 인터넷 매체에서 반박 기사가 나왔다. "보수 원로들의 교권 장악 음모." 강민준과 이사무엘의 발언을 짜깁기하여 정치 세력과 연계된 것처럼 묘사했다.
박여호수아에게는 교단 임원들이 찾아왔다. 요지는 간단했다. 교단 밖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빈 회의실에 혼자 남은 박여호수아는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봤다. 대형교회 담임목사. 교단 총회장 역임. 어디를 가나 인정받는 이름. 그 인정이 지금까지 자신을 움직이는 동력이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그날 밤 박여호수아는 강민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두 달이 지났을 때, 모임 참여자는 스물여덟 명이 되어 있었다. 장소를 옮겨야 했다.
그날 모임에서 부산에서 올라온 오요한 목사 (74세)가 조용히 일어났다. 고신 교단 원로. 목소리가 낮고 단어 하나하나가 무거운 사람이었다.
방이 조용해졌다. 스물여덟 명의 시선이 강민준을 향했다.
강민준은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 경남 어딘가의 80명짜리 교회 목사가 떠올랐다. 부디 시작해 주십시오.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류태양. 현지인들이 우리 보면서 웃어요.
강민준이 눈을 떴다.
이사무엘이 처음으로 눈물을 닦았다. 아무도 못 본 척했다.
그날 밤 강민준은 밤새 노트를 썼다. 선출 방식, 임기, 권한의 범위, 이단 규정 통합 기구, 선교 허브, 재정 원칙. 이미 몇 달 동안 이야기했던 것들이었지만 글로 정리하니 비로소 실체가 생겼다.
새벽 네 시. 그는 펜을 내려놓고 짧게 기도했다.
"주님, 이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광야에서라도 외치겠습니다."
아침이 왔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한 달 후, 한국교회 원로회의 준비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발족했다. 참여 원로 서른두 명. 일곱 개 교단. 공동대표 강민준·이사무엘·박여호수아. 그리고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한 명의 재정 후원자.
발족 기자회견은 작은 교회 친교실에서 열렸다. 화려한 현수막도, 유명 인사도 없었다. 그러나 그날 오후, 기자회견 영상이 온라인에서 수십만 뷰를 기록했다. 각자의 주방에서, 회사 화장실에서, 지하철에서 그 영상을 보며 눈물을 닦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쳤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그 광야의 소리가 세상을 준비시켰다.
이제 광야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