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봄. 한국교회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날이 왔다.
한국교회 원로회의 준비위원회가 출범한 지 일 년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그 일 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교단들의 반발과 비판, 일부 원로들의 이탈, 좌파 성향 교계 언론의 지속적인 공세. 그러나 그만큼의 확산도 있었다. 다섯 명으로 시작한 추가 원로 참여는 예순여덟 명이 되었다. 열일곱 개 교단. 한세광 장로의 재정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 년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전국 개신교 등록 교인을 대상으로 한 첫 번째 대감독 직선 선거가 시작되었다.
각 교회에 투표소가 설치되었다. 온라인 투표도 병행되었다. 교인 확인은 각 교회 담임목사의 확인서로 대체했다. 완벽하지 않은 시스템이었지만, 그것이 처음이었다.
투표 참여율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개표가 완료된 날 밤, 강민준은 혼자 서재에 앉아 있었다. 아내 정한나가 차를 가져다주고 나갔다. 강민준은 그 숫자들을 오래 바라봤다. 28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에 표를 찍었다는 것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는 경남의 그 목사를 생각했다. 80명짜리 교회.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도 오늘 투표했을까.
회의실을 나오면서 이사무엘이 낮게 말했다.
한국기독교장례문화재단이 출범한 지 두 달째 되던 날, 첫 번째 무료 장례 의뢰가 들어왔다.
서울 외곽의 반지하 단칸방. 일흔두 살의 할머니. 자녀가 없었다. 교회 권사로 평생을 살았지만 담임목사도 몇 번 바뀌었고, 마지막에 다니던 교회는 문을 닫았다. 구청에서 무연고 사망으로 처리하려던 참이었다.
재단 팀이 도착했을 때, 방 안에는 낡은 성경책 한 권과 찬송가집 한 권이 있었다.
장례 예배는 소박했다. 최아가다 목사가 집례했다. 조문객은 그 교회 남아있던 성도 일곱 명뿐이었다. 그러나 예배는 온전했다. 찬송이 불렸다. 말씀이 선포되었다. 기도가 드려졌다.
최아가다는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곱 명의 성도들이 눈물을 흘렸다. 최아가다도 흘렸다.
같은 해 여름. 동남아시아에서 류태양 선교사의 영상 보고가 원로회의 월례 모임에 중계되었다.
모임실에 박수 소리가 잔잔히 흘렀다. 노목사들의 박수 소리는 조용했지만 무거웠다.
원로회의 출범 이 년째 되던 가을, 이단 통합 규정 기구가 첫 번째 공식 결정을 발표했다. 신천지를 포함한 주요 이단 단체 열일곱 곳에 대한 통합 규정이었다. 참여 교단 쉰한 개의 공동 서명이 담겼다.
정혜숙은 그 발표를 뉴스로 보았다. 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 수 있게 되었다. 열일곱 군데가 아니라, 한 곳에.
어느 겨울 저녁, 최아가다가 강민준을 찾아왔다. 특별한 용건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앉아서 차를 마셨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창밖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조용하고, 고요하고, 그러나 분명하게.
이 이야기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 안의 문제들은 모두 지금 이 순간 실재한다.
200개가 넘는 교단, 1년짜리 총회장들, 교단마다 다른 이단 목록, 서로 모르는 선교사들, 대정부 협상 창구의 부재. 이것들은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한국교회다.
이 시리즈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구조의 문제는 구조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
대감독 직선제, 원로회의, 이단 통합 기구, 선교 허브, 장례재단. 이것들은 환상이 아니다. 의지가 있으면 가능한 것들이다.
열두 명으로 시작하면 된다. 제자들도 열두 명이었다.